[사설] '정상에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가야 한다'
[사설] '정상에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가야 한다'
  • 김종각 변호사
  • 승인 2018.06.30 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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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에게 이번 월드컵은 어느 때보다 큰 기대가 없었다. 한국 팀의 준비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실망감, 감독의 허언, 부상 등으로 약해진 선수 구성 등으로 인해 기대감을 높이 갖기가 힘들었다. 예선전 2경기를 보며 역시 생각대로구나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마지막 독일 경기는 보고 싶었지만 출장으로 인해 경기 시간 비행기 안에 있어야 했다. 그래도 결과가 궁금해 공항에 내리자마자 핸드폰을 켜 보니 한국이 2-0으로 이긴 게 아닌가? 정말 믿기 힘든 상황이었고, 집에 와서도 유트브를 통해 중요 장면을 보고 또 보았다. 다음날 아침 베트남 사람을 만나니 '축몽'이라며 축하인사를 건넨다. 이 사람도 어제 저녁 한국과 독일의 예선전 경기를 본 게 틀림없다. 축구를 좋아하는 베트남 사람들이 박항서 감독 덕분에 베트남 축구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게 되어서 그런지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을 응원하는 모습이 역역하다.

독일은 한국에게는 절대 강자였다. 2002년 서울월드컵에서도 우리는 독일에게 져 4강에 멈춰야 했다. 그리고 이번 대회는 독일이 FIFA 랭킹 1위로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기에 더욱 넘을 수 없는 산이라 여겼다. 독일은 2014년 월드컵 우승을 비롯해 각종 세계대회에서 강력한 팀 컬러를 보여주었고, FIFA 랭킹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1위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그러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우승후보 1순위가 예선 첫 경기인 멕시코 전에서 흔들렸다. 무언가 균열이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더니 마침내 한국에게도 지면서 16강 예선 통과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한국 국민에게는 마지막 한풀이가 되어 16강 예선 통과 실패를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가 되었지만, 독일에게는 우울한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다.

2010년 월드컵 우승팀이었던 스페인이 다음 대회인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고 16강 진출에 실패한 모습 그대로가 재연되었다. 당시 스페인은 무적함대로 불렸다. 하지만, 2014년 월드컵 예선전에서 네덜란드와 칠레에 연속 패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누구보다 축구에 열광하는 스페인 국민을 패닉에 빠지게 했다. 가장 독보이며 멋지게 우뚝 서 있는 팀들을 누군가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인가?

스포츠를 인생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라톤이 대표적이고, 골프도 많이 언급된다. 야구를 비롯한 구기 종목도 마찬가지다. 월드컵 우승 팀들이 그 다음 대회에서 예선 통과도 못하는 것이 과연 '승자의 저주'인가?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것 또한 하나의 인생 주기 원칙에 해당하는지 모르겠다. 정점에까지 도달한 다음에는 그 왕좌를 조용히 내려놓고 낮은 곳으로 물러나야 하는 그런 원칙 말이다.

고인이 된 김영삼 대통령이 남긴 유명한 어록이 생각난다. "산에 올라간 사람은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 스포츠도 이에 비견되는 것은 아닌지......

현대 사회에서 스포츠는 가장 강력한 인간의 희망과 꿈을 선사하고 있다. 가난한 자도 꿈을 가질 수 있게 하고 희망을 꿈꾸게 만든다. 그리고 영웅으로 우뚝 서 인생 성공을 만끽하게 한다. 특히 돈과 프로 세계의 결합으로 그 매력은 최정점에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떠한 스타도 내려와야 한다는 점이다. 월드컵 열기가 한창인 상황에서 세계적인 축구스타로 군림했던 웨인 루니가 영국 프로축구계를 떠나 미국으로 이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과거 영국 팀에게 없어서는 안 되었던 선수가 이제는 그 자리를 젊은 케인에게 내 주고 조용히 잊혀 져 가는 것이다.

스포츠는 인생뿐만 아니라 경제 주기와도 비슷한 성격이 있는 것 같다. 늘 약체라고 무시했던 팀들이 블루오션 국가처럼 새롭게 부각되어 강팀을 물리치는 모습이 그렇다. 이번에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 팀들의 부상이 그런 면모를 보여주었다.

"계곡이 깊으면 산이 높다"는 말이 있다.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면 더 내려갈 곳도 없고 이제는 올라가는 길만 있는 것이다. 어쩌면 베트남 축구도 그런 주기에 편승해 있는지 모르겠다. 만년 꼴찌였지만 더 내려갈 곳도 없고. "이판사판 죽기로 해보자"하는 강한 각오가 승리를 불러오는 것이다.

스포츠를 보며 열광하는 것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질 것 같은 팀이 이길 수 있는 희망을 갖게 하고, 강해만 보이던 팀도 무너질 수 있다는 한계를 확인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도전 의식을 갖고 새로운 힘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의 변화무쌍도 강자에게는 겸손을 깨우치게 하고, 약자에게는 희망을 갖게 했다.

월드컵의 진정한 가치는 이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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