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민사회의 정보통’ 단톡방, 소통과 고통사이
‘교민사회의 정보통’ 단톡방, 소통과 고통사이
  • 최정은 기자
  • 승인 2018.09.04 1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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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또 카톡 해?”

거의 5분마다 스마트폰을 체크하는 일이 습관이 된 40대 주부 A씨가 딸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돌아서면 어느새 잔뜩 쌓여있는 카카오톡 단체채팅방, 이른바 ‘단톡방’의 글들을 확인하는 게 A씨의 중요한 일과다.

1년 전, 한국을 떠나 베트남에 정착하면서 각종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로 단톡방에 가입했다. 그녀가 속해있는 단톡방은 학부모 모임부터, 동네 모임, 중고거래, 교육정보, 쇼핑 등 이런저런 주제로 20곳이 넘는다. 단톡방의 규모도 적게는 10여명에서, 많으면 1000명 이상인 곳도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단톡방에 얽매인 사람은 A씨뿐만이 아니다. 셀 수 없이 다양한 주제의 단톡방들은 이제 베트남 교민들에게도 없어선 안될 정보와 소통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루종일 단톡방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집밖에 나가지 않고도 지금 베트남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고, 또 이슈가 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바야흐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단톡방으로 모여들고 있다.

단톡방의 순기능

낯선 해외생활에서 정보에 대한 갈증은 모든 교민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과거에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카페나 질문코너 등을 통해 정보를 얻곤했다. 그러나 최근 유행하는 단톡방은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유용하다. 해외생활의 노하우를 적절히 공유하며 교민들끼리 자연스러운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대화를 주고받다 보면 소속감이 생기고, 외로움도 덜어낼 수 있어 일석이조다.

 

단톡방은 소통아닌 고통?

새로운 소통의 수단으로 자리매김한 단톡방도 부정적인 면이 있다. 때로는 지나친 소통이 고통이 되기도 한다.

가입자가 많은 단톡방에서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보기 싫은 글과 대화를 자주 접하게 된다. 정작 유용한 정보는 뒤로 밀린채 각종 광고와, 광고 아닌척 광고하는 마케팅 글들을 보는 것도 은근한 스트레스다. 꼭 필요치 않아도 단순히 소통의 욕구로 인해 단톡방을 들여다 보는 경우도 흔하다. 교민 B씨는 단톡방을 확인하지 않으면 알수없는 불안감과 허전함을 느낀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단톡방에 피로감을 호소하지만, 막상 단톡방을 나오자니 소외될까봐 쉽게 나오지도 못한다. 이쯤 되면 일상의 족쇄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생활 침해와 명예훼손까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불특정 다수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을 통해 사생활 침해 및 악성 댓글, 그리고 유언비어까지 난무한다. 심지어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는 글도 올라온다.

호치민에 거주하는 40대 여성 B씨는 1500여명이 소속된 지역 단톡방에서 중고거래 과정 중 명예훼손을 당했다. B씨로부터 중고책장을 구입한 C씨는 물건에 대한 사소한 불만이 생겼다. 간단히 B씨와 대화로 풀 수 있는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C씨는 지역 단톡방에 B씨의 신상을 공개하고 비난하는 등, 자신의 주장만을 담은 장문의 글을 올렸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일부 단톡방 가입자들까지 덩달아 B씨를 욕하면서 B씨는 큰 충격을 받고 한동안 스마트폰을 멀리하기도 했다.

50대 남성 D씨는 잃어버린 신용카드와 여권사진이 1000명 이상이 가입된 단톡방에 그대로 노출되는 경험을 했다. 사진을 올린 사람은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려는 의도였겠으나 이처럼 개인 정보가 단톡방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범죄에 악용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28세 여성 D씨도 단톡방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지역 단톡방 내에 ‘베트남에 거주하는 20대 여성 친목모임’이라는 새로운 단톡방이 생겨 반가운 마음에 입장했는데, 가입자 대부분이 남자였고, 음란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실제와 다른 단톡방 명칭으로 여성 가입자를 유인하려는 불순한 의도였다. 한국에서도 단톡방 성희롱은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된바 있다.

 

내게 필요한 정보만 얻자!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단톡방은 득이 될 수도 있고 해가 될 수도 있다. 실생활과 밀접한 정보들을 적절히 공유하고 도움을 주고받는다면 단톡방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너무 늦은 밤이나 이른 시각에는 사용을 자제하는 등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적절한 사용으로 단톡방이 일상의 족쇄가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굳이 알지 않아도 될 '투 머치 인포메이션(Too Much Information, TMI)'에 끌려다니지 않도록 한다. 이러한 정보의 과잉은 자칫 결정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과유불급(過猶及)이라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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