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서북기행 (하)
베트남 서북기행 (하)
  • 베한타임즈
  • 승인 2018.11.20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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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엔비엔푸 기념동상

저 멀리 작은 산봉우리에 조그만 원두막이 있고 그곳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또렷이 보인다. 올라가고 싶은 욕망이 꿈틀댄다. 차밭의 많은 여행객들 중에 그곳에 가는 사람은 없었다. 혼자 터벅터벅 걸어서 산봉우리 밑에 도달하니 십대 초반 아이 2명이 앉아 있다.

입장료가 1만동(10,000 dong)이다. 이렇게 조잡한 길을 만들어 놓고 만동을 받으니 속으로 웃음이 난다. 소박한 가격에 웃음이 나고 혼자만의 여유로움에 웃음이 난다.

올라가며 바라보는 풍경들이 시시각각 변한다. 작은 산꼭대기에 올라서 내려다보니 기분은 상쾌하고 가슴은 울렁거리며 심장은 느릿하게 고동이 친다. 아름다운 자연을 맞이하는 내 몸의 징후이다. 역시 자연은 위대하다. 펼쳐져 바람에 나부낀 듯 펼쳐진 산맥들은 시간을 잊은 듯 존재하고 차밭은 한국의 다랑이 논처럼 펼쳐져 있다.

이번여행의 모든 값어치는 이 한순간으로 보상을 받았다. 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곳에 앉아 멍하니 일몰을 감상했다. 모든 것에 감사하다. 지구라는 행성에 나그네로 와서 또한 나그네로 한국을 떠돌다 베트남에서 나그네로 지금 이곳을 떠돌고 있다. 또한 나그네로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결국 나그네로 지구라는 행성을 떠날 것이다. 어느덧 땅거미가 진다. 이곳 산비탈에도 내 어릴 적 부모님이 밭에 심었던 찰벼가 자라고 있었고 초등생 시절 잡아 장난치고 놀던 사슴벌레가 이곳에도 있었다. 그 때처럼 나무꼬챙이로 사슴벌레를 놀리니 이놈이 집게를 크게 벌리고 위협을 하는 모습을 보니 문득 시공간을 이탈한 착각이 든다.

다음날 아침은 안개가 낀 듯했다. 이른 아침에 도착한 다이엠 폭포(Thac Dai Yem)는 약간의 신비감을 주었다. 갈 길이 멀기에 바삐 둘러보고 선라(Son La)로 향했다. 선라에서 하룻밤을 묵고 싶었지만 일정이 빠듯하여 바로 디엔비엔푸(Dien Bien Phu)로 바로 이동했다.

장거리 버스이동으로 가장 힘든 여행일정이었다. 목저우에서 디엔비엔푸까지 8시간 이상을 좁은 시외버스로 이동하였다. 로컬버스의 힘겨운 맛을 톡톡히 본 셈이다. 되돌아갈 장거리 이동에 자신이 없어 디엔비엔푸에서 하노이까지 비행기편을 알아보니 전좌석이 매진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디엔비엔푸 버스 터미널에서 장거리 슬리핑 버스표를 끊었다. 보통 35만동 짜리 티켓가격인데 57만동 짜리 제일 비싼 것이 있기에 주저하지 않고 예매해 버렸다. 도착하는 곳은 하노이 미딩 정류장이 아니라 옌응히아(Ben Xe Yen Nghia) 정류장이었다. 비싼 표를 샀으니 제발 하노이로 돌아갈 때는 힘들지 않기를 바랐다.

이렇게 먼 곳인 디엔비엔푸에 내가 언제 다시 오겠는가? 이틀 동안 열심히 이곳저곳을 돌아 다녔다. 디엔비엔푸라는 도시는 제일 먼저 베트남 프랑스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전장이었던 곳이라고 많이들 기억하고 있다. 나도 그렇다. 빅토리 전쟁박물관, D1고지, A1고지, 방카 사령부, 베트남군 사령부를 찾아 다녔다. 열악한 환경에서 전쟁을 준비하여 피식민지 나라가 식민통치 국을 상대로 승리를 이룬 유일무이한 업적을 이룬 그 당시 베트남 국민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이곳의 많은 전쟁자료를 보고 그 당시 상황에서 힘겨운 결정을 내린 정부 지도자들과 현장에서 과감히 목숨을 걸고 전쟁에 임한 군인들, 후방에서 아낌없이 지원한 민간인들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파쾅호수로 가는 길

오후 늦게는 파쾅(HO Pa Khoang)호수를 둘러보았다. 이곳 관광안내지도에 호수가 있기에 아무 정보도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 산을 넘어가는 트레일 코스가 무척 아름다웠다. 그냥 오토바이 트레일 코스라는 관광 상품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고개 너머 가는 길에서 만나는 소떼들과 산촌에 사는 아낙과 아이들을 만나고 그 속에 부끄러운 듯 숨은 파쾅 호수는 가히 낭만적이다. 다음에도 이곳에 오면 자전거 또는 오토바이로 트레킹을 단연코 할 것이다. 월든(Walden)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처럼 이곳에 통나무집을 짓고 파쾅호수 옆 자락에 살고 싶다는 상상도 해보았다. 어느덧 디엔비엔푸의 해는 넘어가고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역시나 인간의 본성은 이 무렵이 제일 포근한 시각이다.

파쾅호수
파쾅호수

다음날에는 파뜸(Pa Thom)동굴과 산촌마을을 둘러보았다. 이정표가 없는 완연한 산골마을이다. 길도 제대로 포장이 되어있지 않다. 한국의 70년대 이전의 산골마을 같다. 오지에는 전기도 없는 것 같았다. 전봇대와 전선을 보지 못했으니 당연히 전기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산골마을에도 쪼그만 아이들이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이촌향도(移村向都) 현상이 일어나지 않은 시대이다.

오후에는 라오스 국경 검문소에 가보았다. 국경을 통과하는 것은 차량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오토바이도 왔다 갔다 한다. 베트남 여성들이 아침에 라오스로 넘어 갔다가 저녁에 짐을 한가득 싣고 베트남으로 넘어 온다. 이렇게 이들 또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참으로 베트남 여성들의 생활력은 감탄 할만하다. 라오스 국경에서 디엔비엔푸로 돌아올 때는 해가 저물어 오토바이에서 부딪치는 공기는 제법 서늘했다.

하노이행 슬리핑버스

밤 9시30분에 출발하는 하노이행 슬리핑 버스 이름은 ‘Chuyen Co Mat Dot'이다. 해석하면 ’땅 위의 비행기‘이다. 정원 20명의 럭셔리 버스로 침대가 칸칸이 분리되어 있다. 편안해서 나의 선택에 아주 만족했다. 하노이 도착예정시간은 다음날 7시경이다. 약 10시간 주행거리다. 버스는 조용한 밤 시간을 이용하여 하염없이 달린다. 보름날이 하루지난 음력 16일이라 차창 밖은 무척이나 환하다. 환한 보름달 아래에서 시골 들판을 쏘다녀 본 사람들은 환한 밤하늘의 풍성함을 알 것이다. 환한 달빛아래 보이는 베트남 북부 산하의 모습은 선명하다.

침잠(沈潛)한 풍경은 넉넉하여 바라보는 나의 가슴이 먹먹하다. 오롯이 온밤을 뜬눈으로 보내고 싶은 욕망에 휴대전화 음악을 틀고 이어폰을 귀에 끼었다. 저 멀리 보이는 민가의 전등 빛은 한국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 나그네의 우수(憂愁)는 가득차고 피로에 찌든 몸은 찾아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한다. 이번 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해준 것에 대하여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감사드린다.

[호치민시 대구사무소 이한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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