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간절함은 통한다
[사설] 간절함은 통한다
  • 베한타임즈
  • 승인 2019.01.21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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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밤 베트남이 천신만고 끝에 아시안컵 16강에 올랐다. 기대하지 않았던 레바논이 북한을 4:1로 대파하면서 레바논과 베트남의 모든 조건이 같아졌지만, 결국 페어플레이에서 베트남이 레바논을 앞서면서 16강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박항서 감독의 매직이 또 한 번 일어난 것이다. 베트남이 아시안컵 원정대회에서 16강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베트남이 속한 D조는 아시아 최강이라고 하는 이란, 이라크가 함께 편성되어 있었기에 사실상 16강 자체가 어려운 게임이었다. 들리는 소리에 의하면 스즈키컵 우승 직후 박 감독의 몇 몇 지인들은 박 감독의 사퇴를 권유했다고 한다.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 내려오는 것이 보기 좋다는 취지였지만, 사실 아시안컵에서 16강에 오르지 못한다면 그 불만의 화살이 박 감독을 향할까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박 감독은 이런것에 개의치 않았고 최대의 위기일지도 모르는 순간과 맞부딪쳤다. 이는  베트남 축구협회와 맺은 계약기간을 준수해야 한다는 신의에서였다. 잘 싸우던 이라크와의 경기에서 3:2로 지고 난 후 베트남 언론에서 박 감독의 전술에 대한 지적이 약간 흘러나오는듯도 했다. 하지만 박 감독은 흔들림없이 자신의 믿음을 지켰고, 이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이 아슬아슬하게 16강의 문턱을 넘는 행운을 걸머졌다.

박 감독이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이래 박 감독의 승리에 대해서 ‘매직’이라는 수식어가 계속 따라다녔다. 불가능한 상황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기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박 감독 자신도 이를 매직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물론 모든 일에는 행운이 깃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기적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자신의 믿음이 통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베트남 축구 선수들에 대한 믿음, 자신의 전술에 대한 믿음……. 이같은 믿음은 그의  축구 인생에서 터득한 철학에 바탕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마음, 흘린 땀만큼 결과가 온다는  진지한 태도, 위기나 역경의 상황에도 맞부딪칠 줄 아는 용기 등이지 않을까?

요즘 베트남에 사는 우리들은 박항서 감독 덕을 좀 보고 산다. 택시를 타도 한국인인지 물어보며 엄지 손가락을 펼쳐보이고, 가게에 들어가도 웬지 대접이 좋다.

‘매직’ 박 감독을 바라보며 새삼 ‘믿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우리들의 경제활동과 연관해서 말이다.  경제상황의 실제 모습도 아주 중요하고 의미있지만, 그 보다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믿는지가 더욱 의미있는 시대가 되었다.

 도이모이 개방정책 후 베트남이 최대 경제 위기를 겪었던 2008년을 회상해 보면, 이때도 소비자들의 ‘믿음’이 흔들리면서 사태가 심각해졌다고 할 수 있다.  2007년 초 베트남이 WTO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해외투자 분위기는 급물살을 탔고, 시장에는 호황의 분위기가 만연했다. 이런 호황 속에서 베트남 사람들에게 2008년 구정은 그 어느때보다 행복하고 따뜻했다.  

하지만 구정이 끝나고 난 후 구정분위기로 올랐던 물가가 진정되지 않았다. 베트남의 최대 명절인 구정으로 인해 물가는 상승했다가 구정 이후 다시 진정되는 것을 반복해 왔는데, 이 해는 달랐다. 특히, 베트남에서 가장 흔한 쌀값이 계속 오르는 것이다. 쌀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소비자들의 마음이 시장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믿음의 상실은 계속 악순환으로 부풀어 올랐다. 이를 지켜보던 노무라 증권이 은연 중에  IMF 발생 가능성을 제기하자 시장은 불난집에 휘발유를 뿌린 꼴이 되었다. 이때를 회상해 보면, 한국기업들은 계속 베트남을 빠져나갔고, 필자가 모처럼 한국 출장을 가게 되면 주변의 분위기로 인해 망한 나라에서 사는 것 같은 초라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이같은 현상은 과거 역사에도 수 없이 반복되었다. 한 예로, 뉴욕의 대형 신탁회사인 니커보커트러스트 (Kniekerbocker Trust)가 투기성 주식거래로 큰 금액의 손실을 입고 간판을 내리면서부터 1907년의 패닉은 시작되었다. 이에 놀란 일반 예금자들이 돈을 찾으러 자기들이 맡긴 은행과 신탁회사에 줄을 서면서부터 금융위기는 불처럼 번지게 되었다. 이 위기가 확산되면서 신탁회사든 은행이든 건강한 기관들까지도 모조리 휩쓸려 쓰러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1913년 연방준비은행은 이같은 줄도산을 막기 위해 마련된 제도였다.  

실제 경제현실도 중요하지만,  더 의미있고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의 시장에 대한 믿음이다. 요즘 베트남에 오는 한국 기업들을 만나면 이구동성으로 “더 이상 못버티겠다. 최악이다”라는 말을 한다. 물론 IT, 반도체 산업에서 제4차 산업으로의 재편이 벌어지고 있는 산업 변혁기 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녹녹치 않은게 현실이다. 그러나 자신이 처한 위치와 노력,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잃치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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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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