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풍미한 무술의 대가, 피롱 사부
한 시대를 풍미한 무술의 대가, 피롱 사부
  • 베한타임즈
  • 승인 2019.02.25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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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무적의 무술가였던 피롱(Phi Long:베트남어로 용을 뜻함) 사부는 이제 전통무술 연구와 제자양성용 무술원을 빈딘성(Binh Dinh) 안케(An Khe)에 세우기로 했다.

 

1960년대 피롱 사부는 무술계에서 무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는 각종 대회에서 68차례의 KO승을 포함해 87전 86승의 엄청난 기록의 보유자이다. 그는 1966년 베트남 무술 챔피언이자 1968년 인도차이나 무술 챔피언이었다.

 

피롱 사부의 본명은 짠꾸옥롱(Tran Quoc Long)이다. 그는 1944년 빈딘성의 동포(Dong Pho), 떠이손(Tay Son) 무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삼촌은 모두 이 지역에서 유명한 무술가였다. 피롱은 여섯 살 때 삼촌에게 첫 무술 수업을 받았고, 열 살 때, 꼰뚬(Kon Tum)에 있는 라산낌푸옥(La San Kim Phuoc) 신학교에 보내졌지만 무술을 향한 열정으로 중퇴했다.

 

그의 무술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알았던 그의 아버지 짠응히아시(Tran Nghia Sy)는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그 지역 최고의 무술가들을 집으로 초대했지만 피롱을 만족시키기 못했다. 얼마 후, 피롱은 유명한 무술 대가인 후인리에우(Huynh Lieu) 혹은 후옹끼엠낀(Huong Kiem Kinh)에게 사사하기 위해 집을 떠나 푸깟(Phu Cat)으로 갔다.

 

5년 동안 후인리에우 사부와 함께 무술을 연마한 후 피롱은 무술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고, 민띤(Minh Tinh), 탄꽁(Thanh Cong), 짠깐(Tran Can) 그리고 타이빈(Thai Binh) 등 자신보다 체중이 10~20kg 더 나가는 선수들마저 제압하며 빈딘에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그 후, 그는 리꾸옥롱(Ly Quoc Long), 후인롱(Huynh Long), 민롱(Minh Long) 그리고 피롱(Phi Long)과 같은 가명을 써가며 중앙고원 지역, 사이공, 그리고 남서부 지역을 돌아다니며 경쟁자들과 겨뤘다.

 

피롱의 경력은 1966년 비엔호아성(Bien Hoa) 출신의 짠꾸옹(Tran Cuong)을 베트남 무술챔피언대회에서 꺾은 뒤 절정에 달했다. 2년 뒤 캄보디아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캄보디아 출신 무술인까지 누르고 인도차이나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피롱 사부의 인생사는 모두 무예와 관련이 있었다. 도박을 판돈을 잃은 일부가 1967년 비엔호아 대회에서 우승한 피롱을 살해하려 시도했고, 1968년, 꼰뚬(Kon Tum)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그에게 패한 캄보디아 무술인의 친구들이 총격을 가해 부상을 입기도 했다.

 

1975년 이후 피롱 사부는 빈딘성 떠이손 무술협회 회장이 되었다. 1980년에는 과거 응히아빈 지역 체육부의 초청을 받아 도청의 무술팀 감독을 맡았다. 피롱은 현재 빈딘의 전통무술 연구보존개발위원회의 일원이다.

 

베트남, 특히 빈딘성에서 무술 발전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는 이제 빈딘에 있는 안케산 정상에 베트남 무술 위인들을 헌정하는 사원을 지었다. 이곳은 그가 전통 무술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곳이기도 하다. 피롱 사부가 안케를 택한 이유는 빈딘 무술의 고향인 떠이선의 고지대와 저지대 사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롱 사부는 이 지역 무술 애호가들에게 롱덴꾸이안(rong den quy an: 흑칩룡(黑蟄龍))이라 불린다.

 

이제 75세가 된 피롱 사부는 건강 유지를 위해 여전히 무술을 수련하고 있다. 그는 종종 오토바이를 타고 이 지역을 수백km나 돌며 무술 대가의 초자연적인 힘을 과시하고 있다.

 

[베트남뉴스 TTX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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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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