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를 위한 글쓰기 3]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하다
[입시를 위한 글쓰기 3]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하다
  • 베한타임즈
  • 승인 2019.08.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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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서 개요를 잡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서울 A대학의 대입 논술 시험장에서 겪은 일이다. 논제가 적힌 문제지와, 답안을 작성할 원고지, 그리고 백지를 각각 한 장 씩 나누어 주었다. 시작종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느낀 당혹감을 잊을 수 없다. 글을 시작하는 모습이 각양각색일거라는 예상과 달리, 대다수의 학생들에게서 공통된 행동 패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전체의 절반 이상이 원고지를 제일 먼저 펼치고 첫 칸부터 마구 채워 내려가기 바빴던 것이다. 그 장면에서 나는 더 이상 심사 결과에 의미를 두는 것을 접기로 했었다. 도토리 키를 재어서 합격자를 가려내는 것 같은 우스운 생각마저 들었다. 심지어 원고지부터 펼친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의 학생들의 글만 채점 대상으로 삼으면 합격의 향배를 좀 더 빠르고 정확하게 가려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나마 원고지가 아닌 문제지를 먼저 들여다보던 학생들마저 5분 정도 후에는 원고지를 펼치고 빈 칸을 채우기에 급급해 보였다.

 

백지는 왜 주었을까. 단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봤다면 어땠을까. 하필 왜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를 준 것일까. 그냥? 낙서용으로? 적어도 학교를 대표하여 그 곳에 모인 정도의 학생들에게서 관찰된 그날의 그 모습이 대다수를 차지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했다. 그들이 설계도 없이 집을 짓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나는 제출한 글에 관심을 갖고 읽기 어려웠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그 어떤 피드백을 해야 할 지 동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다. 계획 없이 적은 주장으로 독자를 설득해 낼 수 있을까.거듭 강조하지만 입시를 위한 글은 주장을 펴는 글이다. 설사, ‘설명하시오’ 라고 해도 결국 나의 내면을 행간의 흐름에서 드러내야만 한다. 목적이 뚜렷한 평가의 대상인 것이다. 적어도 나누어 준 백지의 쓰임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했다면 분명 그들의 시작은 달랐을 것이고 글의 완성도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개요도 짜지 않고 시작한 그들이 퇴고를 할 리는 만무하다. 아마도 퇴고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5층집을 완성하고 보았더니 1층부터 삐걱댄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집 전체를 어찌 다시 지을 수 있으랴. 그때라도 그들은 백지를 준 이유를 알았을까? 상당히 궁금하다.

 

백지에 먼저 글의 개요를 짜면서 머릿속 의식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배치하고 전략적으로 구성하면 의외의 상황 전개에 대비할 수 있다. 가령, 서론과 본론에서 흐르는 사고의 맥락이 결론에서 뒤집히는 일을 방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논리적 오류를 고치거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도 하면서 좀 더 풍부한 내용을 담을 수 있고 탄탄한 논리의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설계도 없이 지은 집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재미로 지은 모래성이 무너졌다고 애통해 할 사람이 있을까? 무너져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쌓은 것이라도 무너질 때 아쉬움이 있는 법이다. 하물며 튼튼한 집을 지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개요를 짜는 것은 가장 중요한 단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의 전개를 의식의 흐름에 맡긴 채 빈 칸을 채워 내려 가다보면 논리적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고 어느 순간 논리가 무너질 것을 알지만 고치기엔 역부족이다. 개요에서 중심 논리를 세우고 뒷받침할 논거를 구성해 두면 중간에 생각의 흐름이 막히거나 오류가 발생했을 때 수정할 수 있다. 즉, 개요는 글 전체의 전개를 미리 시뮬레이션 해 볼 수 있는 시스템을 세우는 단계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입시를 위한 글은 모양만 갖추어서는 무용지물이다. 다시 말하지만, 자소서의 유일한 목적은 합격이다. 백번을 강조해도 모자라다. 글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제출하기 까지 절대 잊지 않아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겉으로는 멋지고, 안으로는 튼튼하며, 심지어 잘 팔리는 집을 지어야 한다. 설계도 없이 지은 집은 어느 날 무너진다 해도 모두 당연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 성의 없는 글을 탄생시켜놓고 합격을 기대한다거나 독자의 극찬을 희망하는 것은 오만함에 가까운 비틀린 자신감이다. 천운이 따라서 그 부실한 집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 집을 탐내는 사람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레시피 없이 즉흥적으로 만든 요리의 맛이 어쩌다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맛을 다시 또 비슷하게나마 낼 수 있을지 또 먹고 싶을 정도일 지는 의문이다. 불합격의 이유를 자의적으로 성토하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곤 하는 학생과 부모들을 종종 보게 된다.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모습에 더 이상 개선의 여지를 둘 수 있을까.

 

두서없이 적어 내려간 글자의 집합은 메모일 뿐이다. 주제를 향해 흐르는 논리가 있어야 글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내 주장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특히 입시라는 명료한 목적이 있는 상황에서 개요의 틀도 생각하지 않고 펜을 들다니. 탄식을 넘어 통탄할 노릇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철저하게 전략가의 머리와 채점자의 눈으로 쓰고 읽어야 한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나의 이야기를 냉정하리만큼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견고하고 치밀한 논리로 만들어 내야한다. 그렇다면 그 백지에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을 생각하고 전략을 세우는 일부터 이미 글쓰기는 시작이다. 사실 그 백지에 어떤 전략을 어떻게 세웠느냐 에서 모든 결과는 결정된다. 자소서의 주인공 즉 글의 주제가 '나'이고, 작가도 '나'이다. 어쨌든, 자소서를 쓰는 지금 이 시점, 내가 내 이야기를 쓰는 동안은 내가 그 모든 것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있음을 명심하자. 글의 개요를 짜는 시간을 아낀 만큼 글 전체의 논리가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 백지에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한다.

 

국어융합교육콘텐츠연구소 한결可치 대표 김한결 cozyz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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