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에 사기까지... ‘베트남 황제여행’
불법에 사기까지... ‘베트남 황제여행’
  • 정진구 기자
  • 승인 2019.09.03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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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밤거리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관계없습니다.)

한국의 30대 회사원 강모씨는 직장동료 3명과 베트남 호치민시 여행을 계획했다. 그는 여러 여행사이트와 카페를 둘러보던 중 귀를 솔깃하게 하는 정보를 접하게 됐다. 이른바 ‘베트남 황제여행’으로 불리는 패키지였다. 숙박 및 식사, 주변관광, 교통편, 가이드가 포함된 것은 일반적인 패키지 여행과 다를 바 없었다.

 

특이한 것은 전 일정 동안 에스코트걸이라는 베트남 여성과 동행한다는 부분이었다. 심지어 에스코트걸을 원하는 취향으로 선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첫날 일정표에는 ‘에스코트걸과의 디너파티’라고 적혀 있었다. 강씨는 “남성들의 욕망을 적절히 자극하는 일정으로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국인 관광객 이모씨 역시 베트남에서 황제여행 경험이 있다. 그는 “처음에는 여성을 대동한다는 말에 그들이 가이드 역할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가이드는 별도로 있고, 여성들은 여행업 종사자들이 아닌, 유흥업소 종업원들이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기존 패키지 여행 가격보다 비싼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경비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갔다고 토로했다. 그는 “여성들과 동행하다보니, 마치 실제 애인 데리고 다니듯 선물도 사주고, 술도 사줘야 했다. 팁도 적잖이 나갔다”고 설명했다.

 

이런 황제여행은 여행사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보통 1인당 200만원 이상으로 일반 패키지 여행의 몇 배에 달한다. 베트남의 물가를 고려하면 여행사가 취하는 폭리가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황제여행’은 일종의 성매매가 될 수 있어 베트남 국내법상 엄연히 불법이다. 일부 여행사는 일정에 아예 가라오케 방문과 소위 말하는 2차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가라오케에서 만난 업소 여성들이 다음날 에스코트걸이 돼 여행을 함께하는 경우도 있다. 교민 A씨는 “얼마 전 붕따우로 가족 여행을 갔는데, 나이 지긋한 한국인 관광객 2명이 해변에서 딸 또래의 베트남 여성과 연애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볼까봐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고 말했다. 베트남 현지인들 역시 황제여행을 일종의 성매매로 인식하는 등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황제여행 사기사건도 빈번

 

고객의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황제여행 카페

황제여행 자체도 문제지만 이를 이용한 사기사건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의 한 포털사이트에는 ‘베트남 황제여행 사기업체 알림’이라는 피해자들의 카페도 만들어져 있다. 여기에 피해 사례를 올린 B씨는 2인 기준 항공권 포함 520만원에 달하는 황제여행을 예약했다. 계약금으로 300만원을 냈지만 여행사측은 이후 현지 에이전시 사정을 언급하며 120만원을 추가로 요구했다. B씨가 난색을 표하자 결국 이 여행사는 계약금도 돌려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일정을 취소해 버렸다. 카페를 살펴보니 이런 수법으로 피해를 당한 한인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황제여행을 주선하는 여행사들은 현지에 사무실 하나 없이 카페나 SNS 등을 활용해 영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여행객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자신의 여권 사본을 보내주기도 하지만 위조됐거나, 다른 사람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항공권을 구입하기 위해 받은 여행객들의 여권 사본을 자기것 처럼 속이기도 한다. SNS 아이디를 수십개씩 만들어 번갈아 사용하면서 이런 식으로 여행객들의 돈을 뜯어내는 행각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객들은 계약금을 보내기 전, 해당 여행사가 정식 사업자 등록이 있는 믿을만한 곳인지, 현지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지 철저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여행사 홈페이지나 카페 등에 올라온 여행 후기도 믿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한 베트남 황제여행 카페는 모든 후기를 운영자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황제여행’ 자체가 불법적인 요소가 있는 만큼,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베트남에 오래 거주한 교민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큰맘 먹고 해외까지 와서 자칫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 문화와 법을 존중하고 ‘동남아에서 황제처럼 놀아보자’는 그릇된 인식부터 전환해야 한다. 해마다 베트남을 찾는 여행객들이 크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건전한 여행문화 정착은 한국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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