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를 위한 글쓰기 9] ‘디지털 네이티브’가 이기는 방법
[입시를 위한 글쓰기 9] ‘디지털 네이티브’가 이기는 방법
  • 베한타임즈
  • 승인 2019.11.15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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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융합교육콘텐츠연구소 한결可치 대표 김한결 cozyzm@naver.com

우체박물관에 견학을 간 적이 있다. 우표 제작과 발행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가내 수공업을 연상케 할 만큼의 정교한 ‘아날로그’ 제작 방식에서 출발하여 한 장 한 장 우표를 만들던 시기를 지나 디지털 방식으로 대량화하기까지 시간의 흐름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100% 완전한 디지털 방식일까? 예상과 달리, 2000년대 초기까지 완전한 ‘디지털’이던 것이 현재는 ‘디지로그’ 라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디지로그(Digilog)'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이다. 단순한 기능적 우표가 아닌 예술적 소장품으로서의 의미가 더해진 오늘날에는 디지털 기술 방식만으로 우표에 표현해야 할 정교한 삽화나 사진을 미적으로 극대화하기에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두 방식의 장점을 절충한, 디지로그 방식을 통해 아날로그가 주는 섬세하거나 투박한 감성을 고스란히 담으면서 디지털 방식이 가진 기술적 장점이 어우러져 훨씬 명료한 결과물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디지털화의 홍수 속에서 자칫 잃을 뻔했던 아날로그의 감성을 놓치지 않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사례이다.

 

디지털 시대 속에서 아날로그가 주는 항상성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의식주 같은 기본 생활은 디지털 기계에 맡긴다 하더라도, 보다 형이상학적이고 고차원적인 정신의 향유를 위해서는 아날로그 방식을 버리고서는 제대로 영위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할 때이다. 아날로그가 품은 메시지를 읽을 줄 아는 낭만적 기쁨은 디지털 범람 속에 점차 사라질 것이 자명하다. 사라진다는 것은 곧 희소한 것이고 희소한 가치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자가 미래 사회에서 의미 있는 인재가 될 것 또한 분명하다. 이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시대의 과도기에 성장한 부모세대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자식을 키워내야 하기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일종의 힌트이다.

 

자녀의 교육 방식을 두고,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그 때문에 잘 키워낼 수 있는 세대라고 확신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변화와 교체, 혼재의 과정 속에서 장단점을 체험해보았기에 더 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결코 변하지 않는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그것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이 가속화 될수록 ‘아날로그’는 사라질 것이다. 이미 학교생활 곳곳에서 자연스레 자리 잡고 있다. 수업시간의 상당한 부분을 멀티미디어가 교사 대신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도 노트북이나 탭을 이용한 학습 방법이 상용되고 있다. 흥미와 관심을 높여주고 지속적인 학습 동기를 자극해주는 매력적인 장점 덕분에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학습법이 강세다. 노트에 적고 반복하여 읽고 말하는 아날로그 방식은 점차 자취를 감추어 갈 추세에 있다. 키보드에 적어 내려가는 일이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손글씨’는 낯설고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멀티미디어가 제공하는 지식을 재미있게 보는 것으로 학습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 예전보다 분명 최첨단 방식으로 학습 하고 있는 데 왜 학력저하의 비율이 증가한 것일까. 디지털 수업이 오히려 학력저하를 가져온다는 연구사례가 지속적으로 보고되는 것을 보면 우려가 아닐 수 없다. 기초학력조차 도달하기 어려운 학생이 증가했다면 디지털 수업 방식의 확대가 긍정적이기만 한 것인지 짚어봐야 한다.

 

‘디지털’은 학습 효율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학생이 주도적으로 미디어에 담긴 메시지의 내용과 의미를 재해석하고 유의미하게 수업의 주제와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창의적 사고의 흐름과 학습적인 표현의 방식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학습능력이 반드시 병행되어야만 성공적으로 수업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앞으로의 교육 현장에서 디지털화가 더욱 확대되면 사실상 학교와 교사가 학생에게 직접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유전적, 환경적으로 천차만별인 학생들을 교실에 모아두고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설명하는 것은 비효율이라는 사실은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중론이기도 하다. 어떤 지식이든 어떤 방식을 통해 습득했느냐 보다는 가장 적합한 시점에 적절하게 이끌어낼 수 있어야 참된 실력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학생이 갖춰야 할 능력을 디지털의 방식만으로 익히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디지털이 대신 말하고 써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주체인 학습자가 적재적소에 꺼낼 수 있어야만 가치 있는 지식의 효용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처럼 아날로그 방식을 제쳐 두고 진정한 학습 효과를 운운하기는 어렵다.

 

최근 15년간, 신경과학, 생물학, 인지심리학 등 관련 분야의 연구자들은 실제 공부하는 사람이 지식을 얻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교사 혼자 준비하고 말하고 쓰고 활동하는 반복적인 수업 상황을 학생은 초·중·고 시절 내내 12년간 구경만 해온 셈이다. 실질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학생중심의 교육활동이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 자기주도적인 아날로그 학습법을 놓쳐서는 무의미하다. 아무리 최첨단 디지털 교육 방법이 상용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결국, 보고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아날로그적인 ‘진짜 능력’을 갖추었는지의 여부를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먼 옛날 서당의 성독법과 반복학습이라는 학습법이 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살아남아 있다는 것은 그만큼 효과적인 학습방법 중 하나라는 반증일 것이다. 계산기가 연산을 대신 해 줄 수는 있을망정, 문제 텍스트를 읽고 식을 구성하고 풀이 과정을 대신 적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드디어 끝났다. 논술고사 일정에 맞추어 수험생은 다시 움직여야 할 시기이다. 가채점 결과, 정시 합격의 확률 여부에 따라 논술고사의 향방을 결정하고, 짧은 1-2주의 기간 동안 각자의 상황에서 최대의 효과를 끌어낼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할 시점이다. 각 대학별 논술고사 일정을 보면 지금부터 준비 가능한 시간은 짧게는 1주일 길어도 2주일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준비하기 위해 ‘디지털 네이티브’인 수험생들은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 디지털 방식의 준비 방법을 택할 것이라 짐작한다. 과연 ‘디지털’이 시험 준비의 ‘가성비’를 최대로 끌어 낼 수 있을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디지털이 가속화될수록 아날로그적 능력을 겸비한 인재가 희소성을 가진다는 점을 잊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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