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시 한인사회 큰 형님’ 차상덕 옹 별세 
‘호치민시 한인사회 큰 형님’ 차상덕 옹 별세 
  • 베한타임즈
  • 승인 2021.01.08 20: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인회관에서 열린 고 차상덕 한인회 고문의 추도식

베트남 호치민시 한인사회의 원로였던 차상덕 호치민한인회 고문이 지난 1 3 한국에서 타계했다. 안타깝게도 고인은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에 머물던  끝내  2 고향인 베트남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됐다.  

고인의 장례는 한국에서 치러졌으나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호치민한인회와 노인회는 한인사회장을 치르기로 하고 3일부터 이틀간 한인회관 2층에 분향소를 마련해 교민들의 조문을 받았다. 김종각 호치민한인회장은 "15 호치민 한인사회  어른으로 단체 화합·봉사·나눔에 앞장섰기에 업적을 기리고 알리기 위해 한인사회  한인사회장으로 장례를 진행했다" 밝혔다.     

 

장례조문위원회는 이틀간 걷힌 조의금 전액(한화  825만원) 미망인 이춘례 여사에게 전달됐다. 이준레 여사는 호치민시에서 한인사회장이 치러진 것에 대해 “생각지도 못했던 행사를 마련해 외롭게 가시는 고인의 영혼에  행복의 길을 열어주셨다.  배려를 해주신 호치민 교민여러분의  자비심에 어떠한 말로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사했다.

 

고인의 일생은 한국의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 했다. 1930 인천에서 출생한 고인은 1949 한양대학교를 중퇴하고 육군 공병단에 자원입대했다 이듬해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됐다. 일반병으로 입대해 전쟁이 끝난 1954 육군소위로 임관했다.

 

1957 제대  동신양행 공장장으로 실적을  고인은 1965 베트남과  인연을 맺었다. 미국 굴지의 건설회사 RMK-BRJ 기술자로 입사해 베트남으로 발령을 받은 것이다. 당시  급여는 미화 375불이었다.

 

1965 5 당시 사이공( 호치민시) 떤선녓공항을 통해 베트남에  발을 내딛은 고인의  번째 임무는 나짱 깜란베이에 선착장을 만드는 부두공사였다. 이후 사이공 뉴포트 항만공사를 통해 경험을 쌓은 고인은 RMK-BRJ 나와 한국 건설사의 하도급을 받아 여러 공사를 완수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함께 일한 한국인들과 함께 이란으로  고인은 1979 한국에서 정원 엔지니어링이란 회사를 설립해 서해대교 공사에 참여하는  해상공사 노하우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적자 누적돼 결국 부도를 맞았다.

 

이후 고인은 자신이 가진 기술을 활용해 베트남에서 재기를 노렸다. 크고 작은 건설 업무를 맡아 호치민시에 정착하게 되었고 4, 5, 7, 8 원로회장, 한인회 상임자문, 코참 자문위원, 건설협의회 자문위원,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 건축추진위원회 위원장, 노인연합회 초대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인사회 원로로서 다양한 역할을 했다. 최근까지 도박 근절 캠페인과 불우이웃을 위한 집짓기 행사에 참여했고 2016 한인회 분열 당시에서는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한인사회 통합에도 앞장 섰다. 한국 정부는 2007 고인에게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전대주  주베트남 한국대사는 고인에 대해 “건설 전문가로써 마지막까지 공동체를 위해 소진하겠다는 자세를 가진 이라며 “ 구조물이나 건설 관련 일에 도움을 청하면 만사 제쳐놓고 선뜻 달려오셨다 회상했다.    

[편집국]  

Tag
#부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