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일간 박장성에서 코로나와 사투 벌인 사진작가 지앙선동
50일간 박장성에서 코로나와 사투 벌인 사진작가 지앙선동
  • 베한타임즈
  • 승인 2021.07.30 09: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 베트남에서 4월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 4차 유행은 5~7월에 거쳐 확산세를 거듭했다. 당시 박장성은 전국 최초로 수많은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며 팬데믹의 진원지로 지목됐다.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박장성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에서 약 3000명에 달하는 의료진, 공안, 인민군 및 청년 자원봉사자들이 현지에 모였다. 이중에는 베트남 언론 분야에서 유명한 사진작가인 지아선동(Giang Sơn Đông)도 포함돼 있었다. 지아선동은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호찌민시에서 약 1700km가량 떨어진 박장성으로 거리낌 없이 달려가서 혼신을 다해 일했다. 그는 코로나19의 진원지에서 극심한 무더위와 사투를 벌이며 지역 사회를 지원했다. 더 나아가 지아선동은 박장성에서 한 달 반가량의 시간을 보내며 불굴의 정신을 발휘해 역사에 남을만한 의미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는 박장성에서 지역 시민들과 동고동락하며 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해 헌신한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베트남 언론은 지앙선동과 함께 당시 소감을 묻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본래 거주지인 호찌민시에서 1700km나 떨어진 박장성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어떤 계기로 이 같이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을 감수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지난 4월 말 베트남 보건부는 박장성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다고 발표 했다. 당시 나는 마음이 불타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박장성은 내가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이다. 박장성에는 나의 친척, 친지 및 친구 들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박장성에 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고향에서 발생하고 있는 중요한 순간들을 사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박장성으로 가겠다고 순식간에 결정했다. 하지만 결심을 하고 난 뒤 몇 분 후에 마음이 진정됐다. 다시 생각해보니 사전에 준비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시간이 매우 긴박하게 흘렀다. 만약 박장성에 지시령 15호나 16호가 시행되면 호찌민시로 돌아오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 후 여러 가지 질문들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호찌민시에서 어떻게 박장성으로 옮겨가야 하나? 박장성에서 식사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재정적인 준비는 뭘 해야 하는지? 열악한 상황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와 같은 사항들을 고민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로 팬데믹 진원지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건강과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신속하게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했다. 나는 호찌민시에서 박장성으로 갈 때 매우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출발했다.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향후 박장성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떠한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

Q. 당시 팬데믹의 진원지인 박장성에서 한 달 반 정도를 보냈는데 먹고 자며 옮겨 다니는 걸 어떻게 해결했는지?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었다면 공유를 부탁한다.

나는 호찌민시에서 계획을 세우면서 박장성에 있는 친구에게 독채로 된 집을 임대하고 싶다고 전달했다. 박장성에 개인적으로 혼자 머무를 수 있는 숙소를 마련하고 싶었다. 박장성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채를 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별도의 공간을 숙소로 마련했기 때문에 특별한 근무 조건은 없었다. 이와 더불어 박장성에 살고 있는 지인을 통해 오토바이를 빌렸다. 당시 이 오토바이를 타고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는 박장성의 모든 지역을 구석구석 다닐 수 있었다.

박장성에서 50여 일을 보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은 현지 주민들에게서 비롯됐다. 지역 주민, 당국 및 각 분야별 담당자들은 서로를 걱정하며 경험을 공유했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슬기롭게 힘을 모았다.

특히 후지(Fuji) 병원에 일했던 경험은 내가 사진작가로 일하는 평생 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당시 한 시간가량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과 함께 일했다. 의사들은 최대한으로 보호 장비를 갖추고 환자를 돌봤다. 하지만 그 다음 날 후지 병원의 의사 24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 또한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코로나19에 걸리면 박장성에서 계속 일할 수 없을 거라는 걱정이 나를 엄습했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나는 3번의 검사를 통해 음성 판정을 받았다. 박장성에서 계속 일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기뻤다.

나는 매 순간 누르는 사진 셔터를 격려이자 응원의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의료진과 함께 하며 매일 분 단위로 팬데믹과 싸운 기억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박장성 체육관에 마련된 제2 야전 병원에서 일했던 경험도 잊을 수 없다. 내 주변에서는 밤새도록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보호 장비를 착용한 의사들은 경주를 하는 것처럼 앰뷸런스와 병원을 오갔다. 자녀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가득 찬 어머니의 얼굴도 잊을 수 없다. 당시 무더운 날씨에도 물구하고 제2 야전병원의 직원들은 빠르게 움직이며 늘 달렸다. 의료진은 코로나19의 죽음으로부터 환자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초 단위로 매우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도 카메라를 들고 끊임없이 일했다. 당시 나는 사진을 통해 의료진을 응원한다고 생각했다. 팬데믹을 이겨내기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진심으로 높이 평가한다.

Q. 박장성에서 일하는 동안 이인삼각 경기처럼 다른 사람들과 협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에 대한 소감을 부탁한다.

나는 사진작가가 되기 전 인민군으로 일했다. 인민군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구호물자를 전달하는 자원봉사단에 합류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고립된 이웃, 병원, 고아원 등의 시설에 구호 물품을 전달했다. 이 같은 구호물자를 전달하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도 누렸다.

나는 박장성에서 제325 부대의 18단 보병 연대 인민군을 지원했다. 이들은 코로나19 환자들을 위해 인민군 막사를 양보했다. 이들은 옌중군(Yen Dung)의 인민군과 함께 논과 들판 등지에서 머물렀다. 이들이 양보해준 막사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은 격리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제3연대의 인민군들은 제3 야전 병원의 의사들과 환자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했는데, 나 또한 이들과 함께 지원 활동을 했다.

Q. 박장성에서 찍은 사진들을 어떻게 언론에 배포했는지? 해당 사진들을 통해 베트남 전국의 사람들이 팬데믹에 대처하는 헌신적인 노력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는 박장성에서 팬데믹과 관련된 사진을 찍으면 즉시 개인 페이스북 페이지에 업로드했다. 나는 페이스북을 나만의 업무 일지로 활용하고 있다. 많은 친구들과 동료들이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큰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 후 많은 언론사에서 인터뷰를 요청했고 사진 협찬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 나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SNS 잘로(Zalo)를 통해 즉각적으로 언론사에 전달했다. 이를 통해 언론사들은 고화질 이미지를 신속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나는 많은 언론사들이 팬데믹과 맞서는 박장성의 모습을 보도하게 된 걸 기쁘게 생각한다. 이를 통해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한 연대 정신과 힘을 확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나는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박장성 당국에 전달했다. 1테라바이트의 분량으로 향후 기록으로 남게 되길 바라고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박장성에서 찍은 사진을 통해 사진전을 열고 싶다. 박장성에서 보낸 시간들은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Q. 박장성에서 일한 후 소감이 어떤지?

나는 박장성에서 약 50일 동안 일했다. 박장성의 시민들은 나에게 큰 힘과 용기를 북돋아 줬다. 나의 형제들과 동료들도 많은 도움이 됐다. 여러 사람들이 보내준 물질적인 도움과 정신적인 지지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박장성은 일시적으로나마 상황이 개선됐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가끔씩 환청과 망상에 시달리고 있다. 밤새 울리던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아직도 들리고 코로나19로 봉쇄된 지역에서 살고 있는 어린 아이의 표정도 생생하다. 하지만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의 땀과 노력을 생각할 때 미소를 멈출 수 없다. 믿음은 이기게 돼있다. 사랑은 어느 곳이든 확산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결의를 갖고 박장성은 어려움을 극복했다. 베트남 전국의 모든 지역도 궁극적으로 팬데믹을 극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인터뷰 이후 지앙선동과 박장성의 자원봉사단은 베트남 정부 및 일반 시민들과 함께 동탑(Dong Thap) 지역으로 떠났다. 이들은 동탑에서 코로나19 팬데믹과의 사투를 벌이기 위해 협력할 예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