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지역 어려움 딛고 꿈을 이룬 화가 방하이흥
국경지역 어려움 딛고 꿈을 이룬 화가 방하이흥
  • 베한타임즈
  • 승인 2021.10.2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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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하이흥(Vàng Hải Hưng)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베트남의 청년 화가다. 그는 27세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특색을 지닌 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방하이흥은 라오까이성(Lào Cai) 밧쌋군(Bát Xát)에 소재한 꽝킴 마을(Quang Kim)에서 태어났다. 그는 베트남의 소수민족인 지아이족(Giáy) 출신이며 그의 부모님은 농사를 지었다. 방하이흥이 그리는 유화들은 그의 성장 배경을 반영하듯이 생동감이 넘치며 열정이 가득하다.

방하이흥은 수많은 유명 전시회에 참가하며 화가로 명성을 쌓았다. 그중에는 2018년 라오까이성에서 열린 베트남 북서부 지역의 미술 전시회, 2018년 하노이에서 열린 젊은 예술가 전시회인 이거 얼마에요(How Much Is It)’, 2020년 학생 미술 전시회를 비롯해 최근 빈컴 센터(Vincom Centre)에서 열린 현대미술 전인 뭐하고 노는 거야?(What Are You Playing With?)’ 등이 포함돼있다.

방하이흥은 유엔 식량농업기구의 베트남 지부와 베트남 영양 연구소 등의 요청을 받아 건강한 식습관을 주제로 포스터를 제작했다. 현재 그의 포스터는 하노이에 소재한 유엔 본부에 전시돼 있다.

그의 작품을 관람한 사람들은 종종 고통스럽다라는 표현으로 후기를 남긴다. 방하이흥은 그림을 통해 사회 문제를 직시하기 때문이다. 2020년 방하이흥은 ‘Chi Chi Chành Chành’라는 작품으로 학생 미술 전시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작품에는 그의 비유적 스타일이 잘 나타나있다. 방하이흥은 작품 속에서 깊고 중성적인 색채를 사용했으며 자신이 살고 있는 국경 지역에서 나타나는 삶의 변화와 다양한 분위기를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방하이흥은 국경을 넘나드는 물류 박스를 본 기억을 바탕으로 그림을 완성했다. 이 작품의 캔버스에는 박스 무더기가 배경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다. 수많은 박스들이 서로 뒤엉켜 쌓여있는 모습은 경직되고 숨 막히는 분위기를 자아내며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드러낸다.

수많은 박스 앞에는 아무런 의심 없이 이를 쳐다보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조그맣게 묘사돼 있다. 방하이흥은 이와 같이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이미지를 통해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이와 더불어 방하이흥은 또 다른 작품인 살다(Sống)’를 대중에게 선보였다. 이를 통해 방하이흥은 ‘2021년 젊은 예술가 상을 받은 베트남 화가 10인 중 한명이 됐다.

그림에 대한 열정

방하이흥은 나는 라오까이성의 북서부 지역에 있는 산악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농부였고 나는 어릴 때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화가가 된 건 운명인 것 같다. 나는 학창 시절에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꾼 적이 없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 그림에 대한 열정은 늘 갖고 있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예술은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웃 중에서 그 어느 누구도 예술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내 주변 사람들은 늘 먹고 입는 것을 걱정하기에도 바빴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하지만 나는 학업을 위해 하노이로 이사 왔고 그 후로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라며 하노이에서 결국 대학을 옮기고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라고 설명했다.

방하이흥은 베트남 국립산림대학교에서 2년을 보낸 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방하이흥은 국립산림대학교를 다닐 때도 온라인으로 열리는 미술 전시회를 주기적으로 관람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쑤안마이 마을(Xuân Mai)에서 하노이 도심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유명한 미술 전시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졌다.

그는 나는 그리기를 좋아했다. 나는 그림을 볼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색칠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를 지원해줄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가족들은 내가 예술가가 되는 걸 원치 않았다. 당시 매우 슬프고 괴로웠다라고 회상했다.

방하이흥은 수많은 고뇌 후에 미술대학교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가족과 친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이미 예상했다라며 하지만 부모님이 미술은 지원할 수 없다며 재정을 중단했을 때는 진심으로 놀랐다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방하이흥은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돈이 없었던 그는 매해 여름방학이면 고향에 돌아가 배달 일을 하며 학비를 충당했다. 하노이에서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할 때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방하이흥은 그림을 전공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돈을 벌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하지만 전공 공부를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미술과에 진학한 대부분의 동료들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진로를 정하고 미술 공부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했다. 물론 어려웠지만 한편으로는 행복했다. 내가 정한 길을 꾸준히 가다보면 밝은 미래가 열릴 거라고 믿었다라고 설명했다.

방하이흥은 미술대학에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는 2015~2016년 동안 좋은 성적을 달성했는데 이에 대한 실적을 인정받아 베트남 문화스포츠관광부 장관으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다. 당시 그는 미술대학교 2학년에 불과했다.

그는 나는 어려움 속에 자랐고 국경 지역에서 힘들게 일해 본 경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소수민족들을 보면 마음이 통한다. 이들은 매우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 나는 종종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오랫동안 빈곤 속에 살아야 하는지 궁금해진다. 때로는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 나는 이를 주제로 삼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방하이흥은 좋은 성적으로 미술대학교를 졸업한 뒤 1년 여간 최선을 다해 예술가로 성공했다. 그는 이제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꾸릴 수 있게 됐다. 그는 출신 지역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꿈이 있다면 결단을 갖고 될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라며 최선을 다하면 어느 날 꿈이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방하이흥은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변함없이 최선을 다해 노력할 계획이다라며 화가의 꿈을 향한 포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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