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어머니 잠들다
거장의 어머니 잠들다
  • 베한타임즈
  • 승인 2023.02.14 01: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베트남의 피아노 거장인 아들 당타이손과 함께 한 타이티리엔

지난 1월 31일 오전 9시 45분,
베트남 1세대 음악인 타이티리엔(Thai Thi Lien) 교수는 한 세기가 넘는 106세를 살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베트남이 자랑하는 인민 예술가 피아니스트 당타이손(Dang Thai Son, 제10회 쇼팽콩쿨 우승자), 인민 예술가 쩐투하(Tran Thu Ha, 하노이국립음악원 원장 역임) 교수, 건축가 쩐탄빈(Tran Thanh Binh)의 어머니이며, 훌륭한 피아노 교사이자 연주자였다.

1918년 8월 8일 사이공 쩌렁(Cho Lon)의 부유한 지식인 집안에서 태어난 타이티리엔 교수는 1946년 프랑스에 유학하여 파리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한 신세대 엘리트 여성이었다. 그녀의 아버지 타이반란(Thai Van Lan)은 프랑스에서 대학을 졸업한 최초의 베트남 전기 엔지니어 중 한 명이다. 그녀의 오빠는 1946년 사망한 반프랑스 혁명 운동가 타이반릉(Thai Van Lung) 변호사이며 그의 이름은 호찌민시 중심가의 한 거리에 명명되어 있다. 그녀의 여동생은 베트남 최초의 여성 작곡가이자 파리 음악원을 졸업하고 전 세계를 순회 연주한 베트남 피아니스트 타이티랑(Thai Thi Lang) 이다.

타이티리엔 교수는 프랑스 유학 후 당시 베트남 민주 공화국 정부 대표단 일원이었던 혁명가 쩐응옥다잉(Tran Ngoc Danh)과 결혼했다. 1948년 타이티리엔 교수는 남편을 따라 체코슬로바키아에 갔고, 베트남 정부대표로 일하는  남편과 함께 체류하며 프라하 음악원에 입학하여 피아노를 전공하고 졸업했다. 1949년에는 첫 딸 쩐투하(Tran Thu Ha)를 낳았고, 1951년 모녀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중국 북경을 거쳐 프랑스에 맞서 치열하게 저항전이 벌어지는 동안 비밀리에 베트남의 안전지대인 베트박으로 돌아왔다. 1952년에 그녀는 아들 쩐탄빈(Tran Thanh Binh)을 낳았고 도안반꽁(Doan Van Cong) 중앙위원회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남편 쩐응옥다잉씨가 중병으로 사망하는 슬픔을 겪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던 그녀는 유명한 음악가이자 시인인 당딘흥(Dang Dinh Hung)을 만나게 된다. 그는 당시 도안반꽁 중앙위원회의 지도자이자 정치가였으며, 그와의 사이에서 피아노 거장 당타이손(Dang Thai Son)이 태어난다. 
프랑스와의 독립전쟁 기간 약간의 보조금으로 생활하는 동안 그녀는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남편의 의붓 자녀 한 명과 3 명의 자녀를 홀로 키웠으며, 그들은 모두 성공하여 베트남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예술가가 되었다.

타이티리엔의 젊은시절

프랑스와의 전쟁이 끝난 후 하노이로 돌아온 그녀는 베트남 음악학교(후에 국립 음악 아카데미로 명칭) 설립에 참여했다. 인민 예술가 당타이손의 절친한 친구인 음악가 당후푹(Dang Huu Phuc)은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녀는 배트남 음악 교육의 기초였습니다. 나도 그녀의 가르침으로 작곡가를 꿈꾸는 학생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녀의 가족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휴머니즘"이었습니다. 시인 당딘흥의 삶은 매우 무겁고 숨막힐 듯했고 가족은 어려움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집에 수업을 받으러 갔을때 아기 당타이손이 윗층 발코니에서 무작정 기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른 가족은 닭을 돌보느라 바빴고 만약 발코니에서 당타이손이 떨어졌다면 우리는 피아노 천재를 잃게 되었을 것입니다.”
최근 한 특별 음악 프로그램에서 작곡가 당후푹과 인민 예술가 당타이손이 피아노 듀엣을 연주하며 고 당딘흥 시인의 시집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천재 피아니스트 당타이손이 러시아 음악원에서 공부하도록 하기 위해 가족은 고위 지도자들의 후원을 요청해야 했다.  타이티리엔 교수는 아들의 피아노 재능이 확인 되기를 바랐고,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의 최고의 음악 교수들의 지도하에 공부하도록 했다. 어머니의 지극 정성으로 당타이손은 1980년 폴란드에서 열린 제10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혜성처럼 나타나 이보 포고렐리치(Ivo Pogorelich)를 제치고 아시아 피아니스트로서는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하는 놀라움을 선사했다. 아들의 성공은 타이티리엔 교수의 삶의 새로운 활력이 되었고 해외 연주 투어를 함께 동행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베트남 인민예술가 타이티리엔의 생애는 이제 마쳐졌지만 인민예술가이자 새계적 피아니스트 당타이손을 길러내고, 수많은 배트남 음악 인재 양성에 기여한 그녀의 공헌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것이다.
타이티 리엔 교수의 장례식은 수많은 조문객이 모인 가운데 2월 4일(음력 1월 14일) 오전 7시 30분부터 국립 장례식장(5 Tran Thanh Tong, 하노이)에서 거행됐다. 아들이자 세계적 피아노 거장인 당타이손이 장례식장에서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이별하며 연주한 소팽의 장송곡은 슬픔을 넘어 천상의 숭고함을 전해주었다.  

[호치민국립음악대학 주은영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