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따우 앞바다 침몰 화물선 선체 모두 인양
붕따우 앞바다 침몰 화물선 선체 모두 인양
  • 베한타임즈
  • 승인 2014.05.2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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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사고였지만 세월호와 비교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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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2일 붕따우 앞바다 입항 항로 부근에서 침몰되었던 1만3천 톤급 화물선이 인양 완료되었다. 사고 발생은 2013년 11월 7일 23시 45분에 발생하였다. 선박 안에 있던 화물 인양은 2013년 11월 15일부터 12월 10일까지 25일 간에 걸쳐 완료되었고, 선박 인양은 2014년 3월 20일부터 5월 22일까지 이루어졌다.

한국에서 출발한 우리나라 컨테이너 선박은 붕따우 항구에 입항하기 위해 붕따우 앞바다를 항해하여 오던 중 2013년 11월 7일 23시 45분 마셜군도 소속의 5만 톤급 화물선에 옆 부분을 부딪치면서 가로 8미터 세로 3미터의 큰 구멍이 뚫려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사고 조사 결과 마셜군도 소속의 5만 톤급 화물선이 항로를 이탈하며 바다 부표 밑에 있던 쇠사슬이 배 밑에서 돌고 있던 스쿠르에 엉켜 갑자기 방향이 바뀌면서 정상적으로 옆을 지나가던 한국 화물선박을 들이받아 생긴 사고였다. 100% 상대방 과실로 들어났고, 이에 따라 모든 보험처리도 완료된 상태다.

깊은 밤 사고가 났고 바닷물이 밀고 들어왔지만 배는 뒤집어지지 않고 그대로 가라앉기만 했다. 사고해역은 수심 25미터에 유속 5노트, 현재 세월호 사고가 난 맹골수도 만큼 거칠기로 유명한 곳이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면서 상당한 속도의 유속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해 안전 규정을 준수했던 화물선은 컨테이너 박스 등이 흐트러짐 없이 바다에 그대로 가라않았다. 만약 세월호처럼 배가 뒤집어졌다면 인양 작업이 더욱 어렵고 곤란했을 것이라고 인양작업을 총괄했던 박남종 대표(동일붕따우 대표)는 대답했다.

배에는 선박데이터레코드(SVDR)라고 불리는 블랙박스가 있다. 이 블랙박스를 통해 배가 침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상황이 아주 생생하게 보관되어있다. 이 기록을 보면 배에 타고 있던 19명의 선원이 선장의 지휘 하에 선교(항해 당직실)에서 구명정을 통해 무사히 탈출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선장은 맨 마지막 구명정에 올랐던 기록도 남아 있다.

사고 직후 사고수습 절차 과정에서 호치민총영사관의 민첩하고 적극적인 대응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선박은 입항절차를 거치기 전이었기 때문에 선원들은 법적으로 불법거주자 신분이었고, 이 상태에서 한 달 반 기간 조사를 받게 되었다. 조사 과정에서 류영만 경찰영사는 3번 이상 담당 기관을 방문하여 비자연장 등을 지원하였다. 한국과 베트남 간에 체결된 해운 협정이 있지만 아직까지 미흡한 부분이 많아 총영사관의 적극적 지원은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박 대표는 전했다.

인양된 선박은 베트남 침몰자산처리 규정에 따라 현재 국제입찰 절차에 따라 매각될 예정이다.

◀ 박남종/인양업체 대표 ▶

인양 작업은 2단계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컨테이너 박스를 인양하였고, 두 번째로 선박을 인양하였습니다. 인양에 투입되는 시간이 좀 더 빨랐다면 컨테이너 박스에 침수가 생기지 않은 상태에서 원상회복하였을 텐데, 1차 인양 작업을 했던 네델란드 회사가 거센 파도 등의 이유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것도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들어오는 화물선 수만 해도 1년에 600~650척 됩니다. 국제 해양 규정과 베트남 해양법 규정 간에 다른 부분이 있는 점도 정비될 필요가 있고, 한국과 베트남 간 해양협정이 더 밀접하고 긴밀하게 가동되어야 할 필요성도 있습니다. 바다에서의 사고는 대형화 될 소지가 큽니다.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은 가장 기본 중 기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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