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베트남, 통일한반도 - 민족동질성과 신뢰구축 -
통일베트남, 통일한반도 - 민족동질성과 신뢰구축 -
  • 베한타임즈
  • 승인 2016.06.0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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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성취한 베트남, 독일과 70년이 지나도록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한반도는 학자들의 비교연구대상이다. 2016년 4월, 하노이에서 열린 통일포럼에서 진쾅하이(DinhQuang Hai) 베트남 역사연구원 소장은 "승자의 이념과 교만은 화합과 화해의 걸림돌이며, 대결과 상흔의 과거를 덮어 놓지 않으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고 단언했다. 그로부터 한달 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막대한 복지비용 등으로 한반도 통일비용이 1조 달러(약 1천172조 원)에 달할 수 있지만 통일로 얻는 긍정적인 효과도 크다" 는 기사를 실었다.

한반도는 독일/베트남과 분단과정이나 통일로 가는 환경이 전혀 다르다. 동서독은 동족끼리 전쟁을 치르지 않았고, 1971년 왕래를 시작하면서 20년 신뢰를 쌓았다. 30년 세월을 희생한 베트남은 혼자 힘으로 프랑스, 미국을 무력으로 물리치고 통일을 달성했다. 그러나 모든 국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네트워크화된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무력이나 경제력으로 한 나라가 없어지거나 흡수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남북한은 동족끼리 총구를 겨눈 동족상잔의 상흔이 크고 깊다. 초보적인 왕래와 대화는 매번 첫걸음에서 멈춰서고, 한반도가 무력으로 통일되리라고 생각하는 전문가도 없다. 역학관계가 복잡해진 한반도주변 네 나라(미.일.중.러)는 통일된 한반도를 원치 않는다.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기회만 있으면 비극을 갈등으로 키워 이득을 보려는 세력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20년 신뢰구축으로 기회를 놓치지 않은 서독

독일의 경우, 서독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분단 45년 만인 1990년 동독을 통일' 했다. 독일통일의 단초는 1969년 빌리브란트 수상이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수상은 동독을 독일내의 제2국가로 인정하고 동등한 자격으로 만나겠다는 '동방정책'을 공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1970년 양국정상회담이 개최되고 인적, 물적 교류가 시작되면서 71년 11월 '기본조약' 을 체결했고 74년 6월에는 상호 상주대표부도 설치했다.

독일통일의 기회는 '갑자기' 찾아왔다. 유럽의 자본주의와 소비에트사회주의 경쟁이

서독의 압도적 승리로 끝나면서 1989년 10월 고르바쵸프는 브레즈네프 독트린 폐기를 선언했다. '철의 장막' 이 걷히고 동독의 강경 공산당정권은 퇴진했다. 그리고 이듬해 2+4(동/서독+미/영/불/소)국가가 서명한 ‘동서독통합조약’에 따라 10월3일 통일된 독일이 탄생했다. 독일통일은 체제경쟁에서 패배한 소련소비에트연방의 붕괴가 결정적인 계기였다. 분단의 원죄를 진 승전연합국(미,영,불,소)의 의견 일치도 동력이 됐다. 무엇보다도 동독에 대한 경제 및 금융지원으로 신뢰를 키운 서독의 노력이 기회를 놓치지 않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없었던 서독은 언제 닥칠지 모를 통일에 대비하면서 동독주민들

의 신뢰를 얻는 일에 20년 공을 들였다. 경제적 우위를 바탕으로 경제협력과 재정원조, 민간교류확대를 통해 동독주민들의 실질생활개선에 힘썼다. 동시에 분단의 주역이었던 전승국들을 설득하고 지원을 얻어내는 외교적 노력도 기울였다. 그리고 이런 노력들이 갑작스레 찾아 온 기회에 통일성취를 얻어내는 힘으로 모아졌다. 막대한 통일비용이 들어갔지만 지금 독일은 다시 세계 최강국이다.

통일국가의 교훈은 민족동질성회복과 신뢰구축

베트남은 강대국과의 전쟁과정에서 우리와 비슷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함께 겪었다. 1975년 통일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은 베트콩도 해산시키고, 상당수 주민들을 교차 이주 정착시키는 등 정치적인 뒤처리를 신속하게 진행했다. 하노이 통일포럼에서 하이 소장은 "해방된 남부지역에 대한 인적 정리와 교통, 통신수단 등 사회적 인프라는 빠르게 정리되고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통일된 교육제도를 통한 북부와의 동질성회복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고 말했다. 그는 또 "민족동질성회복을 위해서는 이념이나 과거에 얽매여서는 안되며, 고통스런 과거를 묻어두고 민족국가 건설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고 강조했다. 베트남에서는 미국, 프랑스, 중국은 물론, 한때 적대했던 동족들과의 과거를 거론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국가발전과 민족동질성회복에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를 잊지는 않는다. 마음에는 묻어둔다.

통일된 베트남과 독일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와 교훈을 준다. 30년 내전을 치른 베트남은 '민족동질성 회복' 을 위해 과거를 묻었고 인도차이나 패권을 꿈꾼다. 독일은 신뢰구축' 에 20년의 세월과 막대한 비용을 치른 뒤 최강국의 자리를 되찾았다.

세계질서의 변화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베트남은 1979년 통일전쟁의 동지였던 중국

과 전면전을 치른 뒤, 1991년에야 다시 수교했고 10년 교전국 미국과는 1990년 수교했다. 지난해 11월 하노이를 찾은 시진핑은 의례적인 대접을 받았지만, 올 5월, '대량살상무기수출금지 해제' 라는 선물을 갖고 베트남을 방문한 오바마는 '두 나라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 (베트남 측 발표)라는 찬사를 얻었다. 3월에 12차 전당대회를 치른 베트남은 통상 7월에 출범하는 새 지도층구성을 두 달 앞당겨 확정한 뒤 당 서기장과 국가주석 국회의장 모두가 오바마와 만났고, 오바마는 길거리 식당에서 시민들과 어울려 쌀 국수도 먹었다.
친미 인사로 인식되던 전임총리의 서기장도전이 실패한 뒤, 새로 들어선 베트남 지도부가 중국으로 기울지 모른다는 예상은 완전히 불식되기도 했다.

이 준 호 베트남통신사(베한타임즈)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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