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오모리 대학의 응웬 찌 응이아(Nguyễn Chí Nghĩa) 부교수
일본 아오모리 대학의 응웬 찌 응이아(Nguyễn Chí Nghĩa) 부교수
  • 베한타임즈
  • 승인 2017.02.0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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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오모리(Aomori)역에서 내렸을 때 기자는 북동부 지방의 추위에 몸을 움츠리며 당황했다. 그때 한 젊은 청년이 선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는 "환영합니다. 아오모리는 너무 춥다. 제가 가방 들어드릴게요" 라고 말했다. 응웬 찌 응이아(Nguyễn Chí Nghĩa) 아오모리 추오 가쿠인(Aomori Chuo Gakuin)대학의 부교수는 젊은 외모에 선한 미소를 띠고 있었고 부드럽고 친근한 목소리를 가졌다.

응이아 부교수는 아오모리 현 뿐만 아니라 일본의 큰 교육원들 중 하나이기도 한 아오모리 타나카(Aomori Tanaka) 교육원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현재 일본 아오모리 대학은 베트남 내 고등학교와 대학 간 공동교육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수많은 베트남 학생들이 이에 참여하고 있다.

응이아 교수의 고향은 무술로 유명한 빈 딘(Bình Định)이다. 그는 1982년생으로 교사인 부모님과 가족의 교육 기반 덕분에 그는 고등학교에서 자신의 언어능력을 크게 발휘할 수 있었다.

그는 귀 년 고등학교의 영어 특별반을 졸업한 후, 호치민(Hồ Chí Minh)시 대외경제무역대학 캠퍼스2의 대외경제학과를 진학했다. 당시 대외경제학과 학생들은 영어와 일본어 중 하나의 외국어를 선택할 수 있었다. 보통 일본어는 배우기 어려운 언어 중 하나로 유명했기 때문에 그는 이를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그 시기에 호치민 시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과 교류할 기회가 적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일본어 회화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일본인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들을 찾아다녔다.

먼저 그는 일본 유학 세미나 참여를 신청했다. 그 당시에 그에게 일본유학은 생소했지만 일본인과 일본어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를 신청했다.

세미나에서 누구와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지 고민하면서 그는 아오모리 추오 가쿠인 대학의 안내판을 봤다. 이전에 그는 책에서 아오모리 지역은 맛있고 향이 좋은 사과가 유명하다는걸 떠올리며 안내판 뒤에 앉아있던 중년 남성에게 다가가 말을 건냈다.

그는 어눌한 일본어 실력이지만 열정적으로 그 남자와 대화를 했다. 평범한 직원인 줄만 알았던 그 남자는 노리히사 이시다(Norihisa Ishida) 아오모리 타나카 교육원 이사회의 이사장이었다. 아오모리 타나카 교육원 이사회는 아오모리 대학과 많은 전문대학을 소유하고 있는 일본의 큰 교육조합 중 한 곳이다.

스스로의 결심과 노리히사 이시다의 도움으로 2003년 응이아는 아오모리 대학의 법과 경영학과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베트남 청년 응웬 찌 응이아의 일본과 인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지식과 인간미를 겸비한 베트남 청년

모든 사람들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자신만의 노력과 학습 방침 등을 가지고 있다. 응아이의 경우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응이아는 아오모리 대학의 첫 베트남 학생으로서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많은 혼락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총명한 기질과 강한 의지로 혼란을 이겨내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생활을 마쳤다.

그의 열정적인 자세는 센다이(Sendai)시 토호쿠(Tohoku) 대학 소속 대학원에서 경제와 경영학 석사과정을 이수 제안을 받게했다. 박사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2013년부터 그는 아오모리 대학의 법과 경제학과 강사가 됐다.

2016년 4월 1일, 그는 강사를 맡은 동안의 공헌과 우수한 성과로 인정받아 부교수직을 수여 받았고 아오모리에서 가장 젊은 교수 중 한 명이 됐다.

아오모리 대학의 학생들은 응이아 부교수의 지식만이 아니라 그의 인간미 넘치는 마음을 존경한다. 처음 이 곳에 와서 많은 어려움 겪던 베트남 학생들은 그의 도움으로 학교생활을 적응할 수 있었다.

2011년 4월 그는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 지방에서 일어난 지진과 해일 대참사의 난민들을 돕기 위한 푸코카이(Fukkokai)회를 설립했다.

그는 나에게 그 당시 원전사고 난민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난민들은 최대한 방사능 오염지역으로부터 빠르고 멀리 벗어나야한다고 생각하여 아무것도 챙겨오지 못했다. 응이아는 그들을 돕기 위해 아오모리현 내 기업들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도움을 청했다.

마침내 그는 아오모리현 패션 사업가를 만났고 그에게로부터 아주 귀한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기업의 상품을 아오모리 내 난민들에게 나누어주어 난민들이 해당 상품을 가공한 후, 다시 가공된 상품들을 모아 사업가에게 전해주는 식으로 난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아오모리 한 주민은 응이아에 대해 쓴 기사를 나에게 보여줬다. 2014년 5월 23일 토오 니포 프레스(To-o Nippo Press)에 보도된 이 기사는 '아오모리의 눈에 띄는 인물' 이라는 표제와 함께 베트남 청년의 따듯한 마음에 대한 기사를 1면에 발행했다.

응이아의 공헌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베트남학교와 아오모리 대학의 공동교육 프로그램을 촉진시킨 노력을 뺄 수 없다. 13년 전과 비교해 보면 응이아는 아오모리 대학의 유일한 베트남 학생이었지만, 현재 아오모리에는 약 70여명의 베트남 학생들이 법과 경영학과를 전공하고 있다.

아오모리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모두 전공이수 수준에 대해 높이 평가 받고 적합한 직업을 찾아 취업을 한다.

그의 지혜뿐만 아니라 열렬한 열정이 베트남 학생과 일본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안겨주고 있다. 빈 딘(Bình Định)에서 온 이 젊은 부교수이자 청년은 바로 베트남인과 일본인 사이의 우정에 단단한 다리다.

(베트남뉴스_응웬 뚜웬 – 자 꿘(Nguyễn Tuyến – Gia Quân)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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