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게 포효하는 두 나라
무섭게 포효하는 두 나라
  • 김종각 변호사
  • 승인 2017.03.15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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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한 지인이 제주도 성산포 바닷가 사진과 함께 카톡으로 짧은 글을 보내왔다. "제주는 시끄럽게만 들렸던 중국인들의 목소리가 그리울 정도로 거의 중국 관광객들이 보이지 않네요."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 조치가 우리를 불안하고 우울하게 하고 있다. 우리의 영원한 친구인 것만같던 미국 또한 큰 목소리를 내어 간담을 서늘케 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최 강대국 미국과 중국의 무서운 포효 소리로 긴장 분위기에 놓여 있다.

미국 우선주의에 따른 극단적 선택으로 전 세계는 미국에 대한 호감에서 반감으로 돌아서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미국의 눈부신 발전이 다문화, 다민족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던 포용성에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극단적 자국 우선주의 선택이 궁극적으로 미국을 강하게 만들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앞선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미국이나 중국이 선택하는 결정의 자잘못을 따진들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안다. 이러한 평가를 통해 이들을 변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보다는 이들이 갖는 근본적 국가 정체성과 향후 전략적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제대로 간파하고 이에 대처하는 현명한 지혜가 요구될 뿐이다.

미국의 진정한 국가 정체성은 무엇인가? 세계 민주주의 체제의 대변자인가? 세계 평화의 수호자인가?

미국 정체성 이해에 있어서 좀 색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 1850년대 몇 몇 성경학자들은 미국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 으로 해석하여 그 진정한 국가 모습의 실체를 말하기 시작했다. 요한계시록은 AD 100년경 예수그리스도가 가장 사랑하고 아꼈던 제자 요한이 지중해의 작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지내던 중 인근 지역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체 문서이다. 사도 요한이 기록했다는 점에서 기록 초기부터 성경에 포함시켰지만, 기록 문체가 독특하고, 상징이 많이 사용되어 해석이 용이하지 않았다. 특히, 인간이 알 수 없는 미래 시대를 예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묵시록으로도 불렸고, 중세시대에 여러 신학자들이 그 해석을 시도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탁월한 해석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1850년경 미국의 성경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해석이 제시되었고, 크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과거사를 성경에 나와 있는 상징성에 대비시켜 풀어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징들의 해석으로 미래 전개될 역사 또한 예측해 본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미국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일 것인지 밝히는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땅에서 올라오는 두 뿔 달린 새끼양이" 나중에는 "용처럼 말하는 짐승" 으로 변하는 모습을 요한계시록 13장 11~12절에서 묘사하고 있다. 이에 등장하는 새끼양과 짐슴을 미국으로 해석한 것이다. 종교 핍박에 시달리던 청교도들이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점에서 순결하고 온순한 새끼양과 같아 보였다. 하지만, 미래시대 언젠가 무서운 동물인 용처럼 큰 목소리로 호령하고 억압하는 특성을 지니는 무시무시한 '짐승(beast)' 으로 변할 것이라 예측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두고 미국을 모욕한 것이라 반기를 든 사람들도 있었지만, 상징에 대한 해석의 일관성, 다양한 역사적 검증을 거쳐 내 놓은 역사적 실증성 때문에 과거 어느 해석보다 신빙성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과연 미국이 무시무시한 목소리를 내는 짐슴과 같은 국가로 변할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당시로서는 의문이었다. 이 같은 해석이 이루어질 당시만 해도 미국은 박애, 자유, 사랑, 청렴이라는 청교도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해 헌법에 이를 못박는 등 국가적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금주법을 실행해 국민들이 술을 마시는 자체를 아예 금해 버리기도 했다.

이러한 예언적 해석이 있은지 170년이 지난 오늘날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해석의 타당성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계시록 13장에 등장하는 새끼양의 변신은 계속 포악한 쪽으로 흘러만 가고 있어, 만약 이 같은 해석이 맞는다면 미국의 극단적 선택과 무시무시한 모습은 더욱 심각해 질 우려가 있다.

필자는 몇몇 성경학자들이 내 놓은 요한계시록의 해석이 맞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해 이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단지, 미국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모습이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지 그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찾고 싶을 뿐이다. 재미있게도 성경 해석에서 그 조그만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언급해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아주 난애하고 힘든 일이기에 섣불리 해서는 안되겠지만,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는 지혜는 현재의 현명한 선택을 위해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에 시도할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브뤼셀의 자유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가르치는 조너선 홀스래그 교수는 최근에 발표한 '중국 대 아시아' 라는 책에서 "1981년 등소평은 2001년까지 중국의 GDP를 4배로 증가시키는 계획을 수립하면서, 우선 중국이 강력하고 독립적인 경제 주역이 되기 위해서 개방정책을 실시하는 처음 몇십년은 외국기업이 어떤 역할을 하든지 상관하지 않겠지만, 장기적인 목표는 외국기업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를 줄이고 가장 중요한 경제적 자산을 직접 통제하는 것" 이었다고 라고 밝히고 있다(Deng, Xiaoping, 1994. Deng Xiaoping's selected works, Volums3, 341P).

중국의 이 같은 변신에 대해 우리는 사실 예측하지 못했다. 중국의 정치야 어떤 모습을 띠든 진정한 경제 동반자가 될 것이란 기대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의 철저한 변신에 대해 망연자실하고 있다. 이렇게 철저히 변할 줄 몰랐고, 그만큼 대처할 방안도 만들지 못했다. 홀스래그 교수가 밝히고 있듯, 이미 중국의 변신은 예고되어 있었고 내면화 되어 있는 전략이었다.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이에 대응할 능력과 태비를 갖추지 못한 우리의 어리석음을 탓해야 할 뿐이다.

"중국 공세에… 일본 버티기, 필리핀 법대로, 베트남 맞짱" 이란 인터넷 기사를 보고,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란 공감을 가졌다. 과연 우리의 외교 방향은 어디에 두고 있는가? 쟈크 아탈랴가 예측하고 있듯이 세상은 점점 나빠지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현명한 판단과 지혜가 필요하다. 특히, 상대방을 제대로 알고 대처하는 능력을 갖춘 미래 지향적 외교 능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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