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부영
어영부영
  • 김종각 변호사
  • 승인 2017.04.0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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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보내며 그 해의 특성에 맞는 사자성어를 언급하곤 한다. 아마도 올해는 ‘내우외환’이 가장 적절한 사자성어로 채택되지 않을까 싶다. 국내적으로는 국정논단, 조기 대선으로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하고 혼란스럽다. 국제적으로는 더욱 심각한 긴장과 혼돈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조치,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횡포… 두 강대국이 한국을 향해 포효하고 있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고, 어영부영하다간 어느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위기이다. 정말 정신을 차리고 국민총화를 이루어야 할 상황이다. 이 위기의 상황에서 ‘어영부영’이라는 말의 기원이 주는 시사성이 새롭게 느껴진다.

임진왜란을 겪고 난 후 조선은 국방력의 증강이 무엇보다 절실했다. 특히, 임진왜란 기간 일본군의 조총 등 신식무기를 접하면서 조선도 최신 무기를 사용할 줄 아는 병사 양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이러한 새 시대 인식과 필요에 따라 1623년(인조 1년) 장정 260명을 모아 처음으로 화포술을 가르치는 군대를 만들었다. 이 특수부대가 어영군이었고 나중에 어영청으로 바뀌게 된다. 1652년(효종3년)에는 효종의 북벌계획에 의해 어영청을 정비 강화했다. 그 인원수도 21,000명으로 확장하였다. 포나 조총을 쏘는 포수를 양성하는 특수부대로서 그 당시 백성들에게 깜짝 놀랄만한 최신식부대를 선 보인 것이다. 조선사에 나타난 가장 강력하고 초현대 무기로 무장한 막강군대였다. 이를 지켜보는 백성들은 초현대식 무기와 강력한 군기로 인해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말기로 오면서 어영청의 군기가 풀어져서 형편없는 오합지졸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를 지켜 본 사람들은 어영청은 군대도 아니다라고 쑥떡댔다고 한다. 바로 어영청은 군대가 아니다라는 한자어 어영불영(御營不營)에서 어영부영이 유래했다고 한다. 어영청은 급기야 1894년(고종31년) 폐지되고 만다.

요즘 우리의 모습이 어영부영하고 있지는 않은지 몯고 싶다. 뭘 해야 할지 딱히 정하지 못하면서 그저 시간만 때우는 식의 업무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난주 금요일 하노이 롯데호텔에서 국제학술세미나가 있었다. 모두 발표를 맡았던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는 의미심장한 내용을 전달했다. 한국인의 평균 근로시간은 1년에 평균 2,300시간이고, OECD 국가들의 평균인 1,500시간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특히 유럽 선진국들은 1,300시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간 당 생산성은 우리나라가 35불인 반면 OECD 국가들의 평균은 55불이라고 한다. 많이 일하지만 더 적은 생산을 하고 있다면 이건 문제가 있다. 근로의 질이 형편없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의 폐허속에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선진국형 국가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했던 근로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은 제대로 일하고 있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런 해이 함 속에 정치적으로는 사분오열 되어 있다. 군기가 풀어질대로 풀어져 어영불영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어영청과 같은 모습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현재 한국의 세계 1위 경쟁력은 반도체 외에는 이렇다 할게 없다. 이런 성적표로는 우리의 행복을 지속할 수 없음이 자명하다. 세계 1위 경쟁력을 최소한 20~30개는 보유해야 한다. 내우외환의 위기 속에서 심기일전하고 다시 출발해야 한다. 우리 민족은 항상 위기 속에서 강했다. 기댈 수 없는 처절한 환경에서 견뎌내고 끈기있게 지탱할 줄 아는 저력이 있었다. 지금 그 저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직후 황교완 국무총리가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국민 앞에 아주 인상적인 메세지를 전달했다. “촛불을 들었던 사람이나 태극기를 들었던 사람이나 나라를 염려하는 애국의 마음에는 동일하였다”. 그렇다 이제 각자가 갖고 있는 다름을 비방하기 보다는 각자가 갖고 있는 애국충정의 마음을 이해하고 하나로 뭉쳐야 한다. 해외에 사는 교민사회가 어영부영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일치 단결하고 더욱 처절하게 뛰는 분투노력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본국에 조금이라도 긍정의 에너지를 보태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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