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주년 기획 특집시리즈] 아세안 50년, 변방에서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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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한타임즈
  • 승인 2017.11.1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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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허물어지는 아세안… 등교ㆍ진료 위해 이웃국가로"

1부: 통합의 반세기ㆍ1회 허물어지는 국경

베트남ㆍ태국 등 10개국 경제통합 가속


▲ 태국과 접하고 있는 캄보디아 국경마을 포이펫은 날이 저물어도 좀처럼 활기가 식지 않았다. 땅거미가 내린 마을에서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출발하는 45인승 국제노선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 버스는 베트남과 이웃 국가들을 최소한의 출입국 절차만으로 이어주는 유용한 교통수단이다. 8월 8일은 이 버스가 지나는 베트남과 이웃 국가들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의 이름 아래 뭉쳐 우정을 싹틔운 지 정확히 50년이 되는 날.

반세기 만에 물리적인 국경의 한계를 초월하고,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발돋움한 이들 아세안의 통합 현장을 들여다보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1일 호찌민을 떠나 마주한 첫 관문은 베트남-캄보디아 국경. 호찌민발 국제노선버스에 오른 승객 30여명의 여권을 미리 거두어들인 차장은 목바이 출입국심사장에 도착하자 승객을 대신해 한꺼번에 출국 수속을 밟았다. 이어 승객들이 캄보디아 입국 수속장 앞에서 도착 비자를 구입해 붙인 뒤 각자 입국심사를 받고 다시 버스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25분 남짓.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베트남, 미얀마 등지에서 의류 제조사업을 하는 비카스쿠마르(51ㆍ인도)씨는 “과거에는 (입국심사를 위해)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며 “국제노선버스 국경 통과에 걸리는 시간이 점점 줄어 이제 웬만한 출장은 육로로 한다”고 말했다. 이날 240㎞ 떨어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까지 가는데 6시간이 걸렸다. 비행기로 1시간이면 닿는 곳이지만, 공항이 도심 외곽에 있고, 미리 가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튿날 오후 5시, 프놈펜에서 버스로 7시간30여분을 달려 도착한 캄보디아 포이펫. 태국과 맞닿은 이 국경마을에서는 400㎞가 넘는 길을 달리며 눈에 넣은 장면과 사뭇 다른 풍경들이 펼쳐졌다. 좁은 왕복 2차선 도로에 ‘어떻게 진입했을까’ 싶은 수많은 대형 트럭들, 도저히 동시대의 탈것으로 볼 수 없는 낡은 인력거들이 한데 뒤섞여서 흐르고 있었다. 그 사이로 오토바이들은 위태롭게 누비며 사람들을 실어 날랐고, 그 행렬은 땅거미가 내린 뒤에도 그치지 않았다. 2년여 만에 포이펫을 다시 찾았다는 현지 교민 이태영씨는 “사람도, 차도, 오토바이도 이렇게까지 많지 않았다”라며 “그 사이 완전히 탈바꿈했다”고 말했다.

포이펫은 태국 측 국경도시 아란야쁘라텟(아란)과 연결돼 아세안 지역에서 인적 교류와 국경무역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도시로 꼽힌다. 캄보디아의 소도시 포이펫에는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아란과 포이펫을 오가는 인력거꾼 번턴(53)씨는 “예전보다 훨씬 낮아진 국경 문턱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년 전만 해도 오후 5시면 빗장을 내렸던 국경문이 이제 오후 10시까지 활짝 열려 이방인을 맞아주고, 국경을 넘을 때마다 돈(10바트ㆍ약340원)을 내고 받아야 했던 통행증도 요즘엔 6개월에 한 번만 발급(250바트)받으면 된다. 통행료가 3분의 1로 줄어든 셈이라고 한다. 그는 딸(19)과 함께 하루 세 번 짐을 실어 나른다. 여권 없이 통행증으로만 다니기 시작한 지도, 태국 바트화가 자국의 리엘화와 섞여 사용된 지도 오래다. 양국에서 타는 승용차도 바코드 작업 한번으로 그냥 국경을 넘어간다고 했다.


▲ 포이펫 인력거 효녀 스바이(19)와 그의 부친 번턴(53). 과거 매번 내야했던 통행료를 이제는 6개월에 한번만 내면돼 부담도 줄고 편리해졌다고 한다.


꾸준히 증가하는 국경교역

아세안의 전체 무역 중 24%가 역내교역이라고 하지만 국경무역의 규모가 상세히 통계에 잡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교역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사실만큼은 다음날 오전 6시 캄보디아와 태국간 국경문이 열리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태국산 물건들을 갖고 오기 위해 7시 전후로 늘어서던 캄보디아 국경 앞 인력거들 자리에 대형 컨테이너들이 대신 자리했다. 2년 전만 해도 국경으로부터 300m 떨어진 포이펫 카지노 호텔 앞까지 인력거 행렬이 이어졌지만 이날은 행렬이 50m에 미치지 못했다. 국경 초소에 근무하고 있는 한 경비원은 “요즘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대형 화물차가 대신 그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빠르고 안전한 자동차 화물 운송을 경험한 이들이 계속 트럭에 주문을 넣으면서 인력거로 이뤄지던 국경교역 화물들은 자동차로 갈아타고 있다는 뜻이다. 옆에 있던 이는 국경 개방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놨지만, 정오가 다 되도록 인력거는 많이 늘지 않았다.

이처럼 아세안 국가간 늘고 있는 국경교역의 엔진은 ‘실익’이다. 아란에서 물건을 들여와 가판대에 놓고 파는 한 포이펫의 상인은 “태국산이 아니면 팔리지 않으니 태국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캄보디아는 농업기술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작물이 부실하고, 남쪽 베트남에서 실어 오는 채소는 잔류농약이 많다고 한다.

낮아진 국경문턱 덕분에 상품 교역량만 증가한 것은 아니다. 오고 가는 사람도 늘고, 다양해졌으며 연령대도 낮아졌다. 초등학생이 혼자 국경을 넘어가는 장면도 간간이 목격됐다. 어떤 할머니는 “(국경 너머의) 손주를 보러 간다”며 발길을 재촉했고, 수업을 마친 손녀를 태우러 왔다는 땅뜨리(58)씨는 “태국어를 배우면 좋은 곳에 취직을 할 수 있어 국경 너머 학교에 보내고 있다”며 웃었다.


▲ 태국 아란야쁘라뎃으로 볼일을 보러 갔던 캄보디아인들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들이 건너는 다리 중간 저쪽이 태국 이쪽이 캄보디아다.



캄보디아 접경지역 학생 20%는 태국으로 등교

반대로 크메르어를 배우기 위해 캄보디아로 넘어오는 태국 학생들도 어렵지 않게 관찰됐다. 시장은 물론 학교간에도 국경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을 태국으로 보내고 있는 포이펫 주민 드언(25)씨는 “6개월에 미화 100달러 정도를 내면 (태국 학교에)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월소득이 400달러 수준이라고 한 그는 “캄보디아 포이펫과 인근 지역에서 태국으로 등교 하는 학생들은 10명 중 2명에 달할 정도”라고 말했다. 땅뜨리씨는 “주로 태국어 습득에 초점을 둔 유학이며, 국경 넘어 수업이 끝나면 집에 다시 돌아와 영어와 중국어 과외수업을 받는다”며 “아이들이 양쪽 학교를 오가면 더 큰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경 교류가 확대될수록 더 많은 ‘통합’이 이뤄질 것이라는 의미이다.

태국 동부 내륙에 위치한 교육 문화 도시 콘깬. 이곳에서 만난 택시기사는 “콘깬대학병원 등 큰 병원의 환자 절반이 라오스인들”이라고 말했다. 물론 부유층에 국한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는 “이들의 의료여행이 콘깬의 주력 산업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그는 또 라오스와 맞닿은 태국의 국경도시 묵다한에서는 주로 간단한 진료를 받고, 큰 병이 있으면 이곳으로 온다고 귀띔했다.

주민들은 변화 체감 못 해

콘깬에서 묵다한으로 이동하는 길에서는 태국 국기뿐 아니라, 아세안 회원국의 국기들까지 내건 경찰서를 볼 수 있었다. 순찰차 옆에서 포즈를 취해준 한 경찰은 “모두가 하나(all one)”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의 말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아세안 회원국간 출입국관리소 업무가 사실상 하나로 합쳐진 현장을 확인했다. 라오스-베트남 라오바오 국경에서는 양국의 출입국 심사관이 한 부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왼쪽의 라오스 심사관으로부터 출국확인을 받은 뒤 오른쪽으로 한걸음 옮겨 베트남 이민국 직원에게서 바로 입국심사를 받는 식이다. 출ㆍ입국 심사가 ‘원스톱’으로 이뤄진 덕분에 40여명이 탄 버스 승객 전원이 출입국 심사를 마치는 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 라오스 베트남 국경의 출입국심사요원들은 심지어 같은 부스에서 일을 한다 라오스(왼쪽 여성)에서 출국 심사를 받으면 오른쪽으로 한발짝 옮겨 베트남 입국심사를 받는다. 그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원스톱 출입국 심사대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국경 통과, 거칠 것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들, 경제는 물론 교육과 의료서비스까지 이웃 국가로부터 덕을 보고 있지만, 이 같은 지역 통합 움직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수준은 전무 하다시피 했다. 캄보디아 비자 확인 검문소에서 만난 경찰은 “‘아세안’은 들어봤지만 그게 뭘 뜻하는지, 우리 생활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지난 50년간 가랑비에 옷 젖듯, 부지불식간에 그들의 삶은 아세안이라는 이름 아래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호찌민ㆍ다낭(베트남), 프놈펜ㆍ포이펫(캄보디아),아란야쁘라텟ㆍ콘깬ㆍ묵다한(태국),사바나켓(라오스)=정민승특파원
msj@hankookilbo.com

* 아세안(ASEAN):

정식 명칭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 50년 전인 1967년 8월 8일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 당시 동남아지역 자유진영 5개국이 방콕선언에 의해 창설했고, 1980년 브루나이, 1990년대에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가 차례로 가입, 현재 모두 10개국으로 구성돼 있다. 베트남전 당시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한 안보공동체로 출발했지만 탈냉전을 거치면서 경제공동체로 발전했다. 역내교류 확대와 지역통합을 통해 지난 15년 동안 연평균 5.3%의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 베트남 호찌민시를 출발 캄보디아 프놈펜 포이펫, 태국 아란, 방콕 콘깬 묵다한, 라오스 사바나켓을 거쳐 다시 베트남 중부 다낭에 들어왔다. 만 4일 12시간이 걸렸다. 그 정도로 아세안 내에서의 이동은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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