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베트남서 좋은선수 발굴하고 육성하는데 최선을 다할터…”
[스페셜리포트] “베트남서 좋은선수 발굴하고 육성하는데 최선을 다할터…”
  • 정진구 기자
  • 승인 2018.03.07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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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 간 감독’선입견 깨고 베트남 영웅된 박항서 감독

 

 

 

 


폭풍같은 한 달이 지났다. 베트남 대표팀을 이끌고 AFC U-23 챔피언십대회에서 준우승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어낸 박항서 감독은 이제 꿈에서 깨어난듯 차분해 보였다.

준우승 후 베트남에서의 열흘은 눈깜짝할 사이의 시간이었다. 분단위로 짜여진 스케줄에 정신이 없었다. 당시 만났던 베트남의 정부 고위층과 유명인사들을 일일이 기억 못할 정도였다. 베트남 어디를 가도 박항서 감독을 알아보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리고 얻은 한 달간의 휴가. 오랜만에 고국을 찾은 박 감독은 고향 산청에서 구정을 보내며 일상으로 돌아왔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재충전했다. 구름 위를 걷는 듯했던 한 달 동안 그는 향후 계획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제 들떠있던 기분을 다잡고 박 감독은 그에게 주어진 앞으로의 과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난 달 21일, 베한타임즈는 SBS스포츠와 공동으로 서울에서 박항서 감독을 만나 한 시간 반가량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박감독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Q. 상상할 수 없었던 엄청난 성공을 거두셨습니다. 부담이 더 커졌을 것 같은데요.

중국에 있을 때는 잘 몰랐죠. 대회 끝나고 하노이, 그리고 호치민에 가서 제 눈으로 목격하고 나서야 실감이 나더군요. 도리어 책임감이 더 다가왔어요. 베트남 국민들로부터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고 기대치도 높아졌기 때문에 앞으로 그 눈높이에 맞출 생각을 하니 책임감이 더 앞서고 있습니다.

Q. 이제 베트남에서 박항서 감독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것 같습니다. 달라진 위상을 느끼시나요?

이제는 길에서 10명을 만나면 11명이 알아봅니다. 하노이 숙소 근처에 코치들과 가끔 가던 한국식당이 있어요. 전에 가면 사장님이 그냥 '한국사람 오나보다'하고 대했는데, 이번에 갔더니 대우가 달라져요. 음식값도 안받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이영진 코치가 사장님한테 '아니 갑자기 이렇게 대우가 달라집니까'라고 웃으면서 말했죠. 사실 이런 유명세라는 것은 한 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Q. U-23 대회 이후 베트남 축구협회에 엄청난 후원금이 들어왔다고 하던데요?

그동안 베트남 축구협회 예산이 충분치 못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대회 이후 많은 기업들이 후원을 해줬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후원이 대표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협회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Q. 2002년 월드컵과 이번 대회까지, 사실 다른 지도자들은 한 번도 하기 힘든 큰 성공을 두 번이나 경험하셨습니다.

지도자 생활하면서 우승도 몇번 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2002년 월드컵이나 이번 대회에서 우승은 못했습니다. 큰 대회이다보니 관심의 차이는 있겠죠. 베트남 국민들이 열광적인 성원을 하는 이유는 우리 선수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만족하고 있는 것이죠.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Q. 이런 성공에도 감독님께서는 별다른 동요가 없으신 건가요?

2002월드컵 때 저는 코치였죠. 역할도 미미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감독을 했지만 우리 선수들, 코치들, 스탭들이 각자 다 역할을 한 거죠. 제가 감독이라서 스포트라이트를 더 받는 것 뿐이라고 생각해요. 2002년에 제가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인기에 연연하지 않겠습니다.

Q. 처음에 감독님이 베트남으로 간다고 했을때 한국에서는 더 이상 자리가 없어 해외로 간다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베트남 현지에서도 비슷한 반응이었습니다. 아시아권의 감독, 한물간 감독, 창원 아마추어 팀 감독으로 있던 사람이라는 냉소적인, 비판적인 시각도 있었죠. 우리 나이 정도되면 정년 퇴직하는 세대인데 나도 이제는 현직에서 물러나야 하나 싶었어요. 그래서 해외쪽으로 눈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에이전트를 통해 베트남에 가게 됐습니다.

베트남 축구협회가 나를 선택한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이번 대회를 통해 저를 선택한 베트남 축구협회에 작은 보답은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이 더 문제죠. 그 이상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더욱 노력을 해야겠죠.

Q. 베트남 대표팀을 단기간에 바꿀 수 있었던 비법은 무엇인가요?

특별한 것은 없어요. 처음에 와서 보니 베트남 선수들이 무엇인가 닫혀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 대회에서 5골을 넣은 공격수 꽝하이가 그런 이야기를 해요. 할아버지때부터 베트남 선수들은 체력이 약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다고. 그런데 실제로 보니 체력이 약한게 아니더라고요. 선수들이 뭔가 혼동한것 같아요. 체격이 작은것일 뿐 체력이 약한게 아니었는데. 체격은 작아도 베트남 선수들이 민첩성과 기술은 뛰어납니다. 저는 선수들의 이런 선입견을 벗어나게 하고 단점보다 장점을 활용하도록 이야기 해준 정도 밖에 없습니다.

Q. 갑작스러운 성공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도 그런 부분이 염려 되어서 선수들한테 주의도 줬습니다. 선수단이 함께 쓰는 채팅방을 통해서 새해 인사와 함께 제가 이렇게 메시지를 줬어요. '내가 한국에 있을 때 갑작스러운 성공에 취해있다가 추락하는 선수들을 많이 봤다. 선수 본인이 관리를 잘못한것도 있고, 주변의 부추김에 의해 망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는 빨리 초심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또 절대 이번 U-23대회 결과로 인한 기득권은 없다. 더 엄격한 기준에서 평가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Q. 베트남 선수들, 그것도 나이 어린 23세이하 선수들과 어떻게 소통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은 모든 일이 '빨리빨리' 진행 되잖아요. 저도 성격이 참 급한데. 반면 베트남 사람들은 조금 느려요. 그래서 처음에는 '왜 이렇게 느리지?' 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답답해 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은 원래 이렇다고 생각을 해버리니 편해졌어요. 이제는 베트남 사람들이 이해가 됩니다.

선수들과 대화는 말이 안통하다보니 간단한 영어로 이야기 하면서 머리 쓰다듬어 주고, 어깨 쳐주고 이러면서 소통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모습들이 오히려 선수들로 하여금 더 따뜻하게 느껴지게 한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Q. 베트남에서 홀로 생활하다 보니 외롭지는 않으신가요?

여기서 저는 이방인이다보니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 시선을 크게 의식안하고 편하게 생활했어요. 급하면 오토바이 택시도 타고 다녔죠. 23세 대회 마친 후에는 축구협회 팀장이 오토바이는 위험하니까 타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제가 중요해졌나 봅니다. (웃음) 지금도 제 생활은 크게 달라진게 없어요. 한국인 코치들도 있어서 그렇게 외롭지는 않습니다.
Q. 가족들과는 자주 연락하십니까?

주로 SNS로 연락합니다. 제가 다정스러운 표현을 못하는 스타일이라 간단한 안부나 묻는 정도고요. 아내는 조만간 베트남으로 들어와 같이 생활 할 계획입니다. 간혹 아들이 해외 축구 사이트를 뒤져서 상대팀 정보 등을 보내주기도 합니다. 아버지 직업이 축구인이다보니 아들은 오래전부터 축구에 관심이 많았어요,

Q.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이라는 신분을 떠나 이곳에서 더 큰 그림을 그리실 계획은 있으신가요?

아직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습니다. 지금은 대표팀 감독으로서 제 역할을 잘 하는게 중요하죠. 물론 제 임무를 잘 해내는 과정에서 베트남 축구 발전에 이바지 하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제가 U-23 대회 이후 현지언론에 유소년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습니다.

Q. 향후 일정과 계획, 그리고 포부를 말씀해 주십시오.

베트남은 아시안컵 본선진출을 확정지었기 때문에 3월에 있을 남은 예선전은 큰 부담이 없습니다. 8월에 열리는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과 11월 스즈키컵(동남아축구선수권대회)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당분간은 좋은 선수들을 발굴하고 찾는 일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베트남에 축구 기자가 350만명 이랍니다. 그 350만명이 모두 축구 감독 수준이라고 해요. 다들 나름의 소신을 갖고 기사를 쓴다고 합니다. 감독도 마찬가지죠. 감독이 자신의 소신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주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지만 저만의 스타일대로 팀을 이끌어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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