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길운’주는 글귀를 받는 풍습
연초에‘길운’주는 글귀를 받는 풍습
  • 베한타임즈
  • 승인 2014.02.1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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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사람들은 연초와 설날에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의 글귀를 주고받으면서 집에 걸어두는 풍습이 있다. 그러나 옛날처럼 글을 받기 위해 반드시 선생님을 집으로 초대하거나 '옹도' (Ong Do 서예가)에게 예물을 가져가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오늘날은 단지 옹도(Ong Do) 거리에 가기만 하면 원하는 바를 만족스럽게 얻을 수 있다. 비록 현대적인 삶의 방식이 설날에 글씨를 주고받는 풍습을 많이 바꾸어 놓았지만, 여전히 지켜나갈 필요가 있는 아름다운 문화로 남아 있다.



글을 주는 서예가와 '인연'

옛날에 서예가는 매우 큰 정신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재능과 개성 그리고 올바른 마음과 지혜를 갖추고 성현의 글을 가르치며 서예를 전달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선생님으로 존경하고, 글을 중히 여기며 글을 받으러 갔다. 선생님도 글을 줄때에는 사람을 가리고 글귀를 골랐다. 누구든지 선생님의 부름을 받아 글을 선물 받은 사람은 참으로 복이 있고 마음이 바르며 행운이 있는 사람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연초에 글을 주고받는 전통은 단지 베트남 민족의 오랜 세대에 걸친 하나의 아름다운 문화일 뿐만 아니라 또한 스승을 존경하고 도를 중시하는 정신과 학문을 숭상하는 면모를 나타낸다.

하노이 사람들에게는 매년, 구정이 다가오고 봄이 오는 시기가 되면 '옹도 거리' (pho Ong Do) 혹은 '문묘 거리 pho Van Mieu' 라 불리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익숙하다. 서예가들은 반미에우-(Van Mieu - Quoc Tu Giam) 거리의 이끼가 낀 오래된 벽 위에 묵, 글귀가 씌여 있는 빨간 종이와 서예작품들을 걸어놓는다. 연로한 서예가들부터 젊은 서예가들이 '붓을 손에 드는' 시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이들은 칸동(khan dong 전통의상 중 머리에 두르는 수건)을 두르면서 아오자이를 입고 각자의 서예 재능을 발휘한다.

어느 해나 매년 구정이 가까워지는 시기부터 음력1월의 보름달이 저무는 시기까지, 사람들은 이 옹도 거리로 글 구경을 간다. 글을 얻으러 오는 사람들로 이 거리는 마치 축제날처럼 붐빈다.

하노이 탄쑤언(Thanh Xuan, Ha Noi)에 사는 (Do Quoc Toan)씨는 매년 행운을 기원하는 글을 받으러 이곳을 찾는다. "모든 서예가는 서로 다른 서법을 갖고 있고 각자의 성격과 개성을 나타냅니다. 각각의 글자에 대한 자신의 이해 방법으로 자기만의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남프엉 브우까오끼 (Nam Phuong Vu Cao Ky) 서예가의 글을 즐겨 받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선생님은 부드럽고 두터운 둥글둥글한 서체를 갖고 계시는데, -천지인(Thien dia nhan 하늘, 땅, 사람) 또는 수복강녕(Huu tho khang ninh 오래 살고 복을 누리며 건강하고 평안함)- 이론에 따른 심오한 견해를 갖고 계십니다. 또 라이안칸(Lai Ai Khanh)이라는 서예가도 있는데, 단단하고 원기 왕성한 베트남 사람의 풍채와 매우 똑같은 서체를 갖고 있습니다. 모든 서예가는 각자 고유의 서체를 갖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서예가가 자기에게 적합하다고 느껴지면 글을 받습니다. 그것 역시 이른 봄의 중요한 '인연'입니다." 라고 말했다.

문묘 거리에 앉아 있는 젊은 서예가들이 올해에는 다른 해보다 그 수가 적다. 아마도 그들은 노장 서예가들과의 '경쟁' 에서 밀리는 것 같다. 사람들의 믿음과 풍습에, 여전히 나이든 사람들로부터 '녹봉(loc)' 을 받는다는 관념이 하나의 이유다. 경험이 많은 백발의 노서예가는 많은 서체를 연습했기 때문에 글 쓰는 것이 더 능숙한데다 유교, 풍수, 주역의 교리를 자신의 글씨와 결합시켰으므로 그 내공이 크다. 그러나 여전히 매우 특색 있고 창의력 있는 파격적인 서체를 가진 젊은 서예가들이 차별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끌고 그들의 글을 사고 받아가게 만든다.



변형된 관념

문화 연구가들에 따르면, 연초에 귀한 글을 받는 풍습은 그 글귀에 가치와 믿음을 부여해 그 해에 행운과 만사형통을 소망하는 것이라고 한다. 때때로 어린 아이들을 위해 글을 받는 것은 집안의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주의시켜 받은 글의 의미와 같이 바르게 살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 글자를 받아 채워지도록 기원한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글을 받는 풍습의 좋고 아름다운 의미를 변형시킨 관념이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것은 글을 받는 많은 사람들이 '공평한' 태도를 더 이상 갖고 있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운을 주는 글' 을 선호하는 것이다. 자기 사주에 맞는 어떤 글을 받으면 그 글이 본인의 한해의 운명과 재물 운을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글을 받기 위해 단지 10만~20만동을 쓰려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글을 받기 위해 수백만동까지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 해 동안 반미에우 거리에서 글을 써온 서예가 라이안캉(Lai An Khanh)씨는 "요즘 글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모두 본인의 소망에 따라 글을 받아갑니다. 장사와 경영을 하는 사람은 재물과 돈이 관련된 글을 받고, 아이를 원하는 사람은 자식 복을 빌고, 건강과 장수를 원하는 사람은 수명과 관련된 글을 받습니다. 다음년도에 시험을 보는 사람은 재능과 합격을 기원하는 글을 받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사례가 있어요. 그러나 조상을 섬기는 글 또는 '덕' 과 '심' 처럼 자신을 갈고 닦는 글을 찾는 사람은 매우 적어졌어요. 아마도 요즘 세상 사람들의 소원을 비는 방식이 옛날과는 달라진 것이겠지요." 라고 말했다.

집안에 글을 모시기 위해 글을 받는 의미는 여전하지만, 요즘 글을 받는 것은 옛날과 달리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양쪽이 다소 '물질화' 되었다는 것이다. 글을 주는 사람은 글을 주는 일이 봄이 올 때 마다 하는 '먹고 살기 위한' 직업으로 생각하고, 글을 받는 사람 또한 본인의 소망에 따라 새해에 행운, 재물과 돈을 구하는 글을 받기 위해 돈을 쓸 준비를 한다.

심지어 많은 서예가들이 글을 사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구매자의 요구에 따라 자신이 쓰는 모든 글씨에 스스로 고가의 가격을 매기는 등, 글을 받아 모시는 풍습의 고귀하고 아름다운 인문학적 성격을 잃어버리게 했다. 이제 글을 받는 실제적인 의미는 더 이상 옛날처럼 학문을 사랑하고 스승을 존경하고 도를 중시하는데 있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한 가지 사항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매년 이곳을 찾아 단순히 글과 시를 낭송하는 것을 듣고 각 서예가들의 서체와 문구를 감상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빠르고 규격화된 생활 방식과 컴퓨터로 타이핑하는 서류들 사이에서 비록 많이 변형되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연초에 글을 모시는 일을 기억한다. 산업화에 의해 달라지긴 했지만, 이 아름다운 전통문화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안도하고 기뻐해야할 일이다.





 

(베트남통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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