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현 전 베트남대사 특별기고 기획연재①> 베트남과 호치민-호치민 평전을 시작하며
<유태현 전 베트남대사 특별기고 기획연재①> 베트남과 호치민-호치민 평전을 시작하며
  • 베한타임즈
  • 승인 2014.04.1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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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베트남 땅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996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의전 비서관으로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 방문에 수행원으로였다. 하노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주변 경치가 내가 어릴 때 자란 한국의 옛날 농촌과 매우 비슷하여 타임머신을 타고 40여 년 전 고향에 돌아간 듯한 편안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하노이 시내로 들어서니 어쩐지 정리 되지 않은 듯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민첩하고 도시가 살아 움직이는 인상을 주어 흔히 말하는 베트남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하노이에서 유일한 5성 호텔인 대우호텔에 들어가니 모든 시설이나 서비스가 우리나라는 물론 서구 나라들의 그것과 차이가 없어 최선진국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오랜 전쟁과 그 후유증으로 신음하던 나라가 이를 극복하고 산업화를 향하여 용틀임하는 모습이 완연했다.

대통령의 공식 행사에 참여하면서 공공 기관의 모든 방에 호치민 주석의 사진이나 흉상이 있는 것을 보고 조금은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공산주의 국가에 흔히 있는 개인숭배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행사가 끝나고 서울에 돌아가서는 바쁜 일상생활 때문에 베트남에 대한 생각은 무관심 속에 묻혀버렸다. 내가 나중에 베트남 대사가 되고 은퇴 후까지 베트남이 내 조국 다음으로 밀접한 인연을 맺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으니까.

그후 6년여의 세월이 흘러 주 샌프란시스코 총영사를 마치고 대전시 자문대사로 근무한 지 일 년이 다 되어 가는 1999년 12월 외무부 장관이 부르더니 베트남 대사로 나가란다. 나는 외교관 생활 30여년에 유럽에 근무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마지막 포스트인 이번에는 유럽 국가에 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하니 유럽 어느 나라보다 베트남이 중요한 나라이니 가서 열심히 근무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장관실을 나오면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6년 전 베트남 공공기관에서 본 호치민의 흉상이었다. 대사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자기가 근무하는 나라와 국민들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수인데 베트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치민이 키 코드(key code)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때까지 호치민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못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한국 전쟁을 겪은 우리 세대가 갖는 공통점은 과도한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으로 이념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갖지 못하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자에 대하여는 지나치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길로 서점에 들려 호치민에 관한 서적을 몇 권 샀다. 그 중에서도 내용이나 분량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미국 외교관 출신 역사학자인 윌리엄 제이 듀이커(William J Duiker 의 저서인 'Ho Chi Minh' 을 정영목 전문 번역가가 우리말로 번역한 '호치민 평전,이었다.

1960년대 중반 주 베트남(당시 티엠 정권 하의 남 베트남) 미국 대사관에 근무하던 듀이커는 미국의 엄청난 물량 지원을 받는 남베트남 정부군이 밀림의 베트공 게릴라들에게 계속 밀리는 기이한 현상을 보고 그 이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던 중 베트공에게 전투의 동기를 부여하고 전략을 제시하는 최고 책임자인 노 혁명가 호치민의 역할이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미국에 돌아 간 후 듀이커는 공직을 떠나 거의 30여 년 간 자료를 수집하여 완성한 책이 '호치민' 이다.

'호치민 평전' 을 읽으면서 호치민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가졌음은 물론 그런 훌륭한 지도자를 가진 베트남 국민에 대한 경외심과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듀이커는 호치민이 공산주의 운동의 지도자로 비상하는 과정, 쉰 번이나 이름을 바꿔가며 혁명을 배우고 선전하던 세월, 수감과 아슬아슬한 탈출, 조국의 초대 주석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극심하게 분열되고 하던 동료들을 화해시키고, 그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던 모습을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낸다. 호치민은 헌신적인 공산주의자이자 민족 독립을 열망한 민족주의자였으며 국제정치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줄 아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였다. 듀이커는 호치민이 전쟁을 피하기 위해 모스크바, 베이징, 워싱턴과 끈질기게 협상함과 동시에 세 강대국의 반목을 교묘하게 이용하던 과정을 밀도 높게 재구성하고 있다. 철저한 조사에 바탕을 둔 객관적이고도 매혹적인 이 평전은 우리 시대의 가장 우뚝하고 신비스러운 인물, 영감과 혼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의 계시적인 초상화이다."

이상은 '호치민 평전' 에 대한 미국인 교수의 서평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 이 서평을 보고 과장이 좀 심하다고 했던 생각은 책을 읽어 가면서 매우 적절한 평가라고 바뀌게 되었다. 전쟁 중 적대국이었던 미국의 교수한테서 이런 책과 서평이 나온다는 것은 이 책 내용의 객관성을 입증해 주는 것이며 또한 미국의 위대함을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내가 오랜 망설임 끝에 베한타임즈에 호치민에 대한 연재를 하기로 결심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베트남에 거주하는 10여만 명의 우리 동포가 베트남 사람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치민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모든 대학에서 '호치민 사상' 을 교양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호치민의 사상은 베트남 지도자와 국민들의 의식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어 그들의 정신적 지주이며 행동 지침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베트남 동포들에게만이라도 올바른 지도자 상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세종대왕 이후 올바른 지도자를 만나지 못 했다는 말이 농담이 아닐 정도로 지도자 복을 타고 나지 못한 우리 국민들이 지도자를 평가하고 선택하는 안목을 키워 지금까지의 붕괴된 가치관과 정신적 혼란을 청산하고 후손들에게 품격 있고 살기 좋은 나라를 물려주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앞으로의 연재는 상술한, '호치민 평전' 을 주로 참고하되 베트남을 이해하기 위하여 또 하나의 필독서인 '베트남: 10,000일의 전쟁' (마이클 맥클레어(Michael Maclear) 저, 유경찬 번역)을 부분적으로 참고, 인용하되 내 개인 견해도 때때로 삽입할 예정이다. 시간 관계로 방대한 저술을 읽기 어려운 동포들에게 압축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한다는 의미가 있음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

끝으로 본 연재가 혹시라도 베트남 참전 용사들의 공로와 명예를 폄하하는 것 같은 오해를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 참전용사들은 정부의 결정을 존중하여 목숨을 걸고 애국적인 행동을 한 것이라는 내 생각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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