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개인전 여는 한동희 前 코참 회장
두 번째 개인전 여는 한동희 前 코참 회장
  • 베한타임즈
  • 승인 2023.09.2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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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참 회장과 호치민한국국제학교 이사장을 지낸 한동희 펄덴트 회장이 호찌민시에서 두번째 개인전을 연다.

1963년부터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뒤 한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 각종 그룹전에 참여한 한동희 회장은 1986년 인천 미술대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업을 병행하며 꾸준히 그림을 그려왔던 한 회장은 지난 해 첫 개인전에 이어 1년만에 2회 개인전을 열게됐다. 2회 개인전 제목 역시 1회 때와 마찬가지로 ‘Zen & Art(선과 예술)’이다. 전시회 제목과 관련해 한동희 회장은 “좀 더 훌륭한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서 찾아오는 영감과 같이 해야 한다. 그 미지의 세계가 ‘Zen’이다. 거기서 영감이 주어져 작가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훌륭한 작품이 만들어 지게 된다. 이것이 선과 예술의 관계이다”라고 말했다. 한동희 회장의 두 번째 개인전은 The fine arts assosiation of HCMC(218A Pasteur, Vo Thi Sau ward, District 3, HCMC)에서 열리며 10월 9일부터 14일까지다.

다음은 두 번째 개인전을 앞둔 한동희 회장과의 일문일답

Q. 지난 해 첫 개인전을 개최한 후 올해도 개인전을 진행하심을 축하드립니다. 간단한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더없이 기쁩니다. 오랜 소원이 작년에 이루어 졌는데 올해에도 이런 기회가 생겨 제2회 개인전을 열게 되었으니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좋습니다. 이

모두가 주변 사람들의 덕택입니다.

Q.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작품 활동까지 한다는게 쉽지 않은 일인데 요즘 하루 몇 시간씩 작품 활동을 하시나요?

생계를 위해, 가정을 돌보기 위해 일을 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중책도 맞게 되면서 지금은 전세계 치과 거래상에게는 꾀 유명한 회사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몇일 전에 1,2 공장 경영을 맡아주실 분을 모셨고, 이제부터 작품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하려 합니다. 아직도 꿈이 있습니다. 그 꿈 때문에 마냥 즐겁습니다. 그림을 매일매일 그리면서 재주를 숙련시킬 그런 단계는 지났지요. 물론 실력을 향상시키고 배울 때는 당연히 정기적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매일 그림을 그려야 하겠지만, 이제 그런 단계는 오래 전에 끝났습니다. 현재는 어떤 영감이 떠올라 마음에 동요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캔버스

앞에 서서 창작 활동을 하게 됩니다. 물론 어떤 동기가 있어 어쩔 수 없이 그림을 그릴때도 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마음이 움직이는데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냥 마음 가는데로 그립니다. 오히려 잘 그리려고 하는 생각이 그림의 생기를 잃게합니다. 이제는 창작의 시간이지요.

Q. 고등학생때부터 미술에 심취했다고 들었습니다. 화가로서 그동안 걸어오신 길을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중학교 2학년 미술시간에 선생님에게 발탁되면서 그때서 부터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그렸던 것 같습니다. 집안 형님들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방학때도 학교에가서 그림을 그렸으니까요. 오죽하면 방학때 학교를 못가게 하려고 형수가 집앞에서 지키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교복을 뒷마당 개구멍에 집어 넣고 놀러 나가는 척하면서 교복으로 갈아입고 학교에 가서 그림을 그리고 왔어요. 결국 셋째 형님이 “저놈은 어쩔수 없다”라며 나를 인정해주면서 집안의 반대를 이겨 냈지요. 당시 나의 꿈은 미술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후 평생을 곁에 그림을 두고 살아 왔습니다. 이제 그림과의 인연이 60년이 넘어가네요. 아마 세상에 나같은 행복한 화가는 없을 겁니다. 한국 회사에도 작업실이 있고, 여기에도 3곳에 작업실이 있습니다. 대작을 하는곳, 중작을 하는 곳, 소작을 하는 곳, 이제는 작품 보관소를 크게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Q. 서예 부분에서 큰 상을 수상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서예 부분이나 동양화 작품 전시 계획은 없으신가요?

서예 부문이 아니고 30대 때 인천미술대전 동양화 부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동양화라 하면 산수화를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산수화를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산수화는 늘 나하고 안맞는 것 같아서 앞으로도 그릴 기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처음서부터 서양화 전문이었죠. 미술담당선생님이 동양화 전문이셔서 잠시 선생님의 권유가 있었고 잠시 접해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요구는 동양화에 서양화 기법을 첨부해서 창작을 바라셨었어요. 당시 별로 내키지 않았었지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의 그 경험이 지금의 작품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 인터뷰 질문에 답을 쓰면서 그때 왜 선생님이 나에게 그런 요구를 하셨는지, 지금의 내 작품을 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인지 생각해보니 소름이 끼치네요.

Q. 이번 전시회에서 계획하신 특별한 작품 철학이나 세계관이 있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특별한 철학은 없고, 오랫동안 그림을 못그리고 해매고 있었지요. 늘 곁에는 그림 그릴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충분한 시간도 있었는데 정말 붓을 들지 못했습니다.

이런 이야기하면 이상하게 들릴겁니다. 매년 연초가 되면 마음 속으로 의식의 세계에 빠졌습니다. “저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재주를 주셔놓고 언제 쓰시려고 하시는겁니까?” 매년 이렇게 여쭤 보았지요. 답변은 오직 ‘기다려라.’ 그러시는 겁니다. 70세가 넘어서도, 73세까지 오직 기다리라 하시는 겁니다. 드디어 74세가 되어 모든 준비가 되어있는 캔버스 앞에서 그 순간 내면의 소리도 없이 내손에 물감통이 자연스럽게 잡히더니 켄퍼스 위에 물감을 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프라스틱 나이프를 쥐고 마구 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전혀 나의 스타일이 아니였고, 생각조차 해보지도 못한 작품이 만들어졌습니다. 끝나고 나서, 내 의식으로 그림을 보니 생소했지만 너무 그럴듯 한겁니다. 그림이 다소 미흡한 것 같아서 손을 대는데 ‘노 터치 ! 손대지마라!’ 하는 겁니다. 아차싶어 나이프를 놓고 그림 전체를 보니 손댄 부분에 상처를 낸겁니다. 그림 그리다 일어나는 일들은 많치만 어떻게 여기에 다 쓸 수 있겠습니까? 그후 작품 전시를 끝내고 알게 됬지요. 내가 오랜동안 그림을 못그리고 해맨 것이 아름다움을 밖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깨닫게 됐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늘 말을 했는데, 제 눈앞이 어둡다고 그렇게 찾던 아름다움이 밖에 있는 줄

알고 해맸으니, 나도 한심했던거죠. 그나마 참 아름다움은 마음에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느니, 하늘의 도움에 감사를 드리며, 내면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형상이 없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그러한 작품들을 추상화라 부르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앞으로 제가 그리는 그림은 선화라 칭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선과 예술의 창시자’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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