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대법원 판례 제29편 사형판결 받았지만 “나는 살인하지 않았다”
베트남 대법원 판례 제29편 사형판결 받았지만 “나는 살인하지 않았다”
  • 베한타임즈
  • 승인 2024.02.2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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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1. 뚜이엔(N V Tuyên), 1979년생. 주소: 까오방성 Quảng Uyên현, Phi Hải사, Bản Hoe. 민족: 따이(Tày). 직업: 농부. 학력: 9/12 (중학교 졸업). 2006년10월22일부터 구속되었다.
2. 쪼옹(L V Choóng), 1966년생. 주소: 까오방성 Quảng Uyên현, Quảng Hưng사, Lũng Tẩu. 직업: 농부. 학력: 5/10 (초등학교 졸업). 2006년10월22일부터 구속되었다.
3. 뜨엉(N V Đường), 1982년생. 주소: 까오방성 Quảng Uyên현, Phi Hải사, Bản Hoe. 민족: 따이(Tày). 직업: 농부. 학력: 3/12 (초등학교 3학년 중퇴). 2006년10월22일부터 구속되었다.
4. 통(L V Thống), 1984년생. 주소: 까오방성 Quảng Uyên현, Phi Hải사, Bản Hoe. 민족: 따이(Tày). 직업: 농부. 학력: 7/12 (중학교 1학년 중퇴). 2006년10월22일부터 구속되었다.
피해자: 타이(N V Thái) [13세, 사망]
피해자의 법정대리인: 피해자의 친부모인 농 꽁 텀(Nông Công Thâm)과 황 티 렌(Hoàng Thị Len). 주소: 까오방성 Quảng Uyên현, Phi Hải사, Bản Hoe.

사건개요

2006년8월14일 밤 7시10분경에 타이(N V Thái)는 어버지 농 공 텀(Nông Công Thâm)에게 허락을 받아 Quảng Uyên현, Quảng Hưng사, Lũng Tẩu촌에 놀러갔다. 다음 날 타이(Thái)가 돌아오지 않아 텀(Thâm) 부부는 이웃들과 함께 타이(Thái)를 찾으러 나갔는데, Lũng Tẩu촌에 위치한 한 석굴 밑에 숨겨진 채 살해당해 죽어 있는 타이(N V Thái)의 시체를 발견하였다. 신고를 받고 나서 까오방성 공안청 수사기관은 수사를 진행하여 다음과 같이 파악하였다. 

사망한 타이(Thai)는 텀(Thâm)과 황 티 렌(Hoàng Thị Len) 사이에 태어난 자녀이다. 이 둘은 1990년 재혼하였고, 1993년 타이(Thái)를 출생하였다. 처음에는 새어머니 렌(Len)과 남편의 자식 사이에 문제가 없었는데 점점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의붓자식 뚜이엔(N V Tuyên)과 새어머니 렌(Len) 사이에 싸움이 자주 발생하였다. 남편의 자식 뚜이엔(Tuyên)과 남동생 통(N V Thống)은 2004년부터 집을 나가 따로 살았다.

2006년7월, 뚜이엔(Tuyên)은 해외 취업을 가기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했지만 집문서가 없어 대출을 못받았다. 이때 뚜이엔(Tuyên)은 자신의 아버지 텀(Thâm)이 새어머니 렌(Len)의 말을 들어 대출을 받도록 토지사용권증명서를 제공해 주지 안았다고 생각하고 새어머니 렌(Len)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고 이복동생 타이(Thái)를 죽이려로 하였다. 타이(Thái)가 깨오짱 고개(đèo Kéo Trang)에서 시장에 갔다오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습관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뚜이엔(Tuyen)은 2006년8월14일 저녁 5시30분경에 통(N V Thông), 뜨엉(N V Đường), 로이(N V Lợi)에게 Quảng Hưng사, Lũng Tẩu촌에 가서 쪼엉(L V Choóng) 집에서 술을 먹자고 하였다. 술 자리에서 뚜이엔(Tuyên)은 쪼엉(Choóng)에게 “이따가 때리러 갈 수 있어?”라고 물었고, 쪼엉(Choóng)은 “왜 못 해?”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던 통(Thống), 뜨엉(Đường), 러이(Lợi) 모두는 뚜이엔(Tuyên)과 쪼엉(Choóng)이 누구를 죽이려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밤7시 30분경 하늘이 어둑어둑 해졌고, 모두가 쪼엉(Choóng)의 집을 나갔다. 깨오짱 고개에 올라가는 길에 오솔길을 지나갔을 때 뚜이엔(Tuyên)은 러오(L V Lầu)의 집 올타리에 있는 팔목 정도 크기의 나무막대기(길이: 80cm) 하나를 빼서 들고 갔다. 10미터를 더 가다 길에 앉아있는 이복동생 타이(Thái)를 보았다. 뚜이엔(Tuyên)은 바지 주머니에서 눈 부분에만 구멍을 뚫어놓은 까만 천조각을 꺼내 머리에 쓰고  타이(Thái) 쪽으로 다가갔다. 뚜이엔(Tuyên)은 나무막대기로 타이(Thái)의 몸을 때리자 타이(Thái)는 살려달라고 외치면서 바위틈에 넘어졌다. 뚜이엔(Tuyên)은 따라 뛰어갔고 “야 도와줘”라고 외치자 쪼엉(Choóng)은 타이(Thái)의 머리를 잡았고, 뜨엉(Đường)은 타이(Thái)의 다리를 잡았다. 뚜이엔(Tuyên)은 막대기를 들어 머리를 몇 차례 연속으로 내리친 후 타이(Thái)의 얼굴을 막대기로 몇 차례 찔렀다. 타이(Thái)가 죽은 것을 알고 쪼엉(Choóng)은 머리 부분, 뚜이엔(Tuyên)은 등 부분, 뜨엉(Đường)은 다리를 들어 타이(Thái)의 시체를 석굴에 버렸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돌, 풀, 쓰레기를 가져와 타이(Thái)의 시체를 덮으라고 하였다. 그리고나서 이들은 밤8시15분경 집으로 돌아갔다. 

2006년8월25일자, 까오방성 법의학진단기관은 “피해자 타이(N V Thái)가 오른쪽 안와골절, 왼쪽 안와골에 금이 가고, 비골골절, 상악골골절 다발성 손사상으로 인해 급성 출혈 쇼크로 사망하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까오방 인민법원 1심 판결

형법 제93조 1항 c, n호, 제46조 1항 p호, 제46조 1항 p, q호를 적용해서 뚜이엔(N V Tuyên)을 사형, 뜨엉(N V Đường)을 징역 18년, 쪼엉(L V Choóng)을 징역 16년, 통(N V Thống)을 징역 12년, 로이(N V Lợi)를 징역 10년의 “살인죄”로 처벌하였다. 

피고인들은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하였다.

하노이 최고인민법원 2심 판결

1심판결문을 변경없이 그대로 유지하였다. 

2009년7월22일 베트남 최고인민법원장은 재심 결정(제24/2009/HS-TK호)으로 1심과 2심 재판을 파기하고 다시 수사하여 재판할 것을 재판관위원회에 요청하였다. 최고인민검찰원장도 최고인민법원장의 재심 결정에 동의하였다. 

재판관위원회 판단 

1. 1심법원과 2심법원은 수사기관에서 잘못을 인정한 쪼엉(Choóng)과 로이(Lợi)의 진술, 사건 발생 전에 뚜이엔(Tuyên)과 공범들이 쪼엉(L V Choóng)의 집에 있었고 거기서 뚜이엔(Tuyên)이 공범자들에게 사망자 타이(Thái)를 때리러 가자고 했음에 대한 증인들의 진술과 현장조사 결과, 시체 부검과 사건의 수사 진행을 근거로 뚜이엔(Tuyên)과 공법자들에게 타이(Thái)를 살해했음으로 판결하였다. 

그러나 쪼엉(Choóng)과 로이(Lợi)의 진술을 살펴보면 서로 모순이 되고, 사건의 전개, 각 피고인의 역할과 범죄행위에 참가 정도에 대하여 각 피고인의 진술도 모순된다. 1심 재판에서 쪼엉(Choóng), 로이(Lợi)는 무죄를 주장하였고, 2심 재판 법정에서 피고인들은 수사 과정에서 말했던 진술이 강요를 받아서 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정확히 살피지 않았다. 

다이(Đại), 숭(Sung), 똥(Tong), 따오(Tạo), 비엔(Viền) 모두 5명의 증인은 사건 발생 전에 뚜이엔(Tuyên)과 공범들이 룽따우촌(thôn Lũng Tẩu)에 위치한 쪼엉(Choóng)의 집<피고인 뚜이엔이 타이를 살해하자고 하던 장소로 확정되었음>에 있었음에 대해서 진술하였으나, 2심 재판 법정에서 다이(Đại)와 비엔(Viền)과 숭(Sung)은 진술을 받은 담당자가 그렇게 진술하기를 강요했음을 이유로 수사기관에서 진술했던 모든 것을 부인하였다. 증인들의 부인은 사건의 실제 전개와 피고인들의 범죄행위를 확정하는 데 영향을 끼찌는 요소였다. 

2. 그 외에, 조사하여 규명하지 않은 사건에 관련된 다른 문제들도 있다. 구체적으로: 
2006년8월14일 저녁 5시30분경 뚜이엔(Tuyên)은 통(Thống), 뜨엉(Đường), 로이(Lợi)에게 룽따우촌(thôn Lũng Tẩu)에 가자고 하였다. 쪼엉(Choóng)의 집에서 타이(Thái)를 살해할 것에 대해 상의한 후, 깨오짱 고개(đồi Kéo Trang)에 가서 밤 7시30분경 범죄를 행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뚜이엔(Tuyên)은 죄를 인정하지 않으며 그 시간에 반호에쏨(xóm Bản Hoe)에 위치한 집에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뚜이엔(Tuyên)의 집에서 깨오짱 고개(đèo Kéo Trang)까지 거리가  얼마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그리고 피고인들의 사용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 쪼엉(Choóng)의 집에서 깨오짱 고개(đèo Kéo Trang)에 가는데 얼마나 걸리는지에 대하여 조사를 하지 않았다. 깨오짱 고개(đèo Kéo Trang)에서 비명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고 하는 다이(Đại)와 산(Xanh)의 증언을 확인하기 위해 범죄 현장에서 나는 소리를 그들의 집에서 들을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확인하지 않았다.

또한 사건 서류에 따르면 피해자의 어머니인 황 티 렌(Hoàng Thị Len)의 가족과 반호에쏨(xóm Bản Hoe)에 거주하는 몇몇 사람들 사이에 토지와 일상생활에 대해 분쟁이 있었고, 렌(Len) 모자를 죽이겠다고 협박한 사람도 있었다. 타이(Thái)의 죽음에 대해서 그의 어머니 렌(Len)은 시동생인 뜨엉(Tưởng), 모이(Mọi), 롱(Rông) 등에게도 의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이같은 사실에 대해 규명하지 않았다.

사건 발생 3개월 후, 렌(Len)의 이웃인 롱(Rông)은 한 수첩을 남겨두고 목매달아 자살하였다. 수첩에는 타이(Thái) 살인 사건에 관련된 내용이 적어있었고, 렌(Len)은 공안에 신고하였으나 이 문제도 아직 조사되지 않았다. 

상기 문제들을 살펴보면 이 사건은 특별히 중대한 사건이며, 최고로 높은 사형 처벌을 받은 피고인이 있는데 사건 수사, 기소, 재판에 잘못된 점이 많으므로 수사 단계부터 사건을 다시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상기의 이유들 때문에, 형사소송법 제284조, 제285조, 제287조, 제289조에 의거하여

결정

하노이 최고인민법원 2심법원의 2007년10월30일자 제955/2007/HS-PT호 형사 재판 2심팔견문과 까오방성 인민법원의 2007년6월28일자 제34/2007/HS-ST호 형사 1심판결문을 파기하여, 기본 수속절차에 따라 재수사를 하도록 최고인민검찰원에 사건 서류를 전달한다. 

해설

살인 사건으로 주된 피고인에게 사형 판결까지 내려졌다. 하지만 피고인은 범죄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하고 수사과정에서 피고인의 말이 진실한지 알리바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또한 여러 관련된 주변 내용들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수사과정에서 이를 모두 말끔히 규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피고인들, 증인의 진술은 강요를 받아서 작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베트남 최고인민법원은 이러한 점을 인정하여 재수사를 지시하였고, 이는 베트남 법정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여 주는 요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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