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남성학 기반을 세운 쩐꽌안(Trần Quán Anh)교수
베트남 남성학 기반을 세운 쩐꽌안(Trần Quán Anh)교수
  • 베한타임즈
  • 승인 2014.08.1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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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은 생각보다 부부에게 심각한 고통이며 가정이 붕괴될 위기를 가져다준다. 쩐꽌안(Trần Quán Anh)교수는 불임으로 인해 고통 받는 수 천 가정을 지켜내고 부부에게 어머니, 아버지가 되는 기쁨을 가져다 준 장본인이다. 그는 수천 명의 아이들에게 "후원 할아버지" 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쩐꽌안 교수는 베트남에서 남성학의 기반을 세운 학자이다. 지금까지 베트남 남성학 분야는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남성불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도 보다 솔직해지게 되었지만, 쩐꽌안 교수는 남성불임증에 대한 연구와 치료는 이 병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바꾸는 것만큼 어렵지는 않다고 전했다.

그는 1961년에 태어나 하노이 의학대학을 졸업한 후 강의를 하며 교수의 길을 걸어왔다. 그 기간 중 그에게는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가정을 꾸린지 오래되었지만 성 기능에 문제가 있어서 아이가 없었다. 사회의 이목이 그렇듯, 그 친구의 가정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과 압력 앞에서 산산이 부서질 위험에 처해있었다. 친구의 이와 같은 슬픔은 그 친구 한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숨은 아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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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꽌안 교수는 남성학 연구를 깊이 하기 위해 하노이 의과 대학 비뇨기 수술과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당시 전쟁 중이었던 60, 70년대에는 베트남에 남성학에 관련된 서적이나 자료 등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때문에 그와 동료들은 스스로 치료 방법을 연구하고 찾으며 이해해야 했다.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한 끝에 그는 그 친구의 남성불임증을 고쳐주었고, 친구는 아이를 갖게 되어 그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치료법에 대한 기쁜 소식을 들은 의료보건부는 그의 남성불임증 치료 방법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그때부터 안 교수는 베트남에 남성학 전문 분야를 세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90년, 베트남-독일 병원에 속한 베트남의 첫 남성학 전문 센터가 설립되었고, 쩐꽌안 교수는 센터 대표라는 직책을 맡아 선두로 지휘를 이끌었다. 이곳에서 한 동안 일을 하면서 그는 남성학에 대해서 이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심리 전문가와 같은 역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쩐꽌안 교수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자신의 남성불임증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가정이 깨질 위험이 날이 갈수록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하루 이틀 치료해서 바로 치료되는 병이 아니고 보통 몇 달에서 길면 일 년 동안 장기적으로 치료를 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상태에 따라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 치료이다.

쩐꽌안 교수는 황금 손을 가진 사람이라고 불리며 비뇨기 수술 분야에 있어서 칭송 받고 있지만, 본인은 자신을 매우 평범한 연구자일 뿐이라고 했다. 지난 40년 간의 업적을 통해 그는 환자의 30%를 치료하는 데에 성공하였으며, 남은 70%도 치료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화빈(Hòa Bình)성에서 하노이로 올라온 응웬탄훙(Nguyễn Thanh Hùng)씨와 판티낌융(Phan Thị Kim Dung) 부부를 만났다고 한다. 그들 부부는 쩐꽌안 교수를 만나 누가 불임인지 진단을 받고 이혼을 결정하기로 하던 참이었다. 검사 결과 그는 불임의 원인이 남편 쪽에 있다고 진단을 내렸고 치료를 잘 받으면 반드시 평범한 부부처럼 생활할 수 있다고 단언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 판티낌융 씨는 눈물을 흘리며 주변 지인들과 친인척들까지 모두 소문을 알고 있어 따가운 시선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그저 홀가분히 이혼을 하기 위해 진단을 받으러 온 것이지, 서로를 책망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쩐꽌안 교수는 이 부부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점심식사 자리에 초대했다. 그는 그들의 이혼에 불임증이라는 단 하나의 사유밖에 없다면, 이 불임증은 반드시 치료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약 1년에 걸쳐 3번의 치료를 나누어 받아야 한다고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의 설득을 들은 부부는 그의 말에 따라 첫 번째 치료를 받는 것을 동의하였다.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약을 처방하고 센터에서 치료를 한 뒤로도 그는 매주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환자 가족에게 믿음을 심어주었다. 또한 그는 이 부부, 특히 훙(Hùng)씨에게 향하는 가족의 압력을 덜어주기 위해 그의 가족과도 통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현재, 이 부부는 4살짜리 딸 린단(Linh Đan)양과 2살짜리 아들 하이남(Hải nam)군을 낳아 기르며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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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꽌안 교수는 스트레스와 압력이 가득한 일상에 지칠 때면, 차를 타고 화빈 성에 찾아가 이 둘 부부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는 이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에게 마치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처럼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고 한다. 최근 그가 훙씨의 가족을 방문 했을 때는 막내아들 하이남 군이 그를 향해 처음으로 "할아버지!" 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는 너무 행복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는 일평생을 의학계의 길을 걸으며 가장 큰 일 두 가지를 하였는데, 첫 번째는 베트남의 남성학 분야에 기반을 세우고 의사들을 양성한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불임증으로 인해 깨질 위험에 처해있던 수천 가정을 지키고 그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 것이다. 현재 쩐꽌안 교수는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여전히 리남데(Lý Nam Đế)길에 있는 떰안(Tâm Anh)개인 병원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그는 남은 여생을 힘이 닿는 데까지 환자들을 치료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베트남통신사_통티엔(Thông Thiện)기자, 사진_땃썬(Tất Sơn)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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