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의 자수공예 예술인 레반낑(Lê Văn Kinh)
후에의 자수공예 예술인 레반낑(Lê Văn Kinh)
  • 베한타임즈
  • 승인 2014.05.2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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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의 자수 장인 레반낑(Lê Văn Kinh)은 호찌민 주석의 시를 실크 자수로 남겨 '베트남 국가기록원(일종의 기네스북)' 에 세 번째 등재되는 기록을 세웠다. 자수 작품은 호찌민 주석의 '옥중일기' (남쩐 Nam Trân, 역문)중 'Tẩu lộ(주로)' 와 'Hoàng hôn(황혼)' 이다.

레반낑은 호찌민 주석의 인문적 소양과 혁명에 대한 서정성 그리고 시의 결말에서 우러나오는 낙관에 감탄하여 자수로 남기기 시작하였다고 밝혔다. 이전, 2011년과 2013년에도 각각 레반낑의 작품이 '베트남기록’에 등재되었다. 이는 24개 국어로 씌여진 승려 만교의 시 '고절시중' 수 십 편과 반야바라밀다심경이다. 승려 만교 의 '고절시중' 은 가장 많은 언어(14개 국가)로 쓰여 졌는데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덴마크, 스페인, 일본,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과 전 세계의 불교국가 언어로 쓰여 졌으며, 각각의 작품은 고유의 필체와 색깔로 수 놓였다.

이번에 레반낑은 호찌민 주석의 '옥중일기' 133편의 시 중 '주로' 와 '황혼' 을 선택하였다. 호찌민 주석은 그의 저항 시기에 이 감옥에서 저 감옥으로 옮겨 다니며 갖은 수모를 겪고 극도로 빈곤한 환경에 처했었다. 그 시기의 고통이 오히려 그에게 철학적 사색을 불러일으키고 문체와 시상이 소박하고 영감 적이다. 낑씨는 호찌민의 고난에서 단련된 정신이 생기 있는 문장으로 승화하였다고 전했다.

칠색 비단 위에 베트남어로 된 호찌민 주석의 시 '주로' 는 붉은색 비단실로 짙은 색에서 옅은 색까지 그 음영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한자에는 붉은색 비단실로 수를 놓은 다음 금실로 바느질하였으며, 원료는 모두 중국의 상하이에서 구입했다고 한다. 레반낑은 또한 청색 비단실로 '황혼' 을 수놓았다. '주로' 와 마찬가지로 섬세하게 음영을 표현하였으며, 세련미와 섬세함을 추구하였다. 특히 장인은 반푹(Vạn Phúc) 비단 생산 지역에서 생산된 금색 비단 실과 검정색 비단을 재료로 선택하여 섬세함과 생동감을 자아내었고 금선을 통해 시의 혼을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레반낑의 집안은 본래 대대로 타고난 자수 장인 집안이다. 그의 선조는 카이딘(Khải Định)과 바오다이(Bảo Đại)왕조에 황포를 진상하기도 하였다. 지난 2003년 4월 정부는 레반낑을 민간예술인으로 명명하였다.

그는 혈통에서 손재주를 물려받은 것 외에도 어릴 때부터 스스로 전통 자수를 연구하였다. 그는 현재 후에 지방에서 모두를 뛰어넘는 최고의 장인이 되었다. 이 때문에 후에의 흐엉(Hương)강, 응우(Ngự)산, 티엔무(Thiên Mụ)사찰에서 레반낑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수 십 장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이 사찰을 더욱 성서롭게 만들고 모든 사람들 끌어들이는 매력을 발산하며, 특히 농촌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지난 '후에 페스티벌' 에서 레반낑의 작품 '국화' 와 '금의환향' 이 후에의 자수 애호가들과 대중에 소개되었다. 그는 작품 '국화' 를 통해 완성도 높은 연꽃 자수를 보였다. 풍부한 가지들과 연잎, 꽃봉오리, 암술이 후에의 자수 기법에 따라 조화를 이루었다. 그는 또한 '금의환향' 을 수놓을 때, 주제의 핵심을 완성도 있게 표현하고 진실성을 더하기 위해 많은 자료들을 심도 있게 연구하였다. 그는 일생을 '덕' 이라는 글자와 함께 하는 것을 신조로 삼아 오늘날의 명성을 얻었다.

레반낑은 1958년부터 1975년까지 그는 자수 장인으로써 작품 활동을 하는 동시에 후에(Huế)시 판당루(Phan Đăng Lưu) 82번지에 위치한 득탕(Đức Thành)자수품 전문 상점을 운영했다. 1975년 이후, 그는 구 빙찌티엔(Bình Trị Thiên)성의 상공업부에 자수 수출 조장을 연임하였고 후에의 푸화(Phú Hòa)자수 마을 수출가공 협력 대표를 맡았다. 그는 자수공예의 발전을 위해 현재까지 10만 자수 공예가들을 육성하였으며, 이 중 많은 후계자들이 후에시와 인근 지역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다.

[베트남뉴스_꾸옥비엣(Quốc Việt)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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