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 베트남 경제개방 개혁의 모든 기본 축은 법률 제도 개선으로 부터 비롯되고 있다. 1997년 한국을 비롯하여 아시아 주요국에서 IMF의 태풍이 지나간 후 2000년 베트남은 다시한번 기업법을 개정하게 되었고, 이러한 법률 정비에 따라 약 8만개의 민간기업이 생겨난다. 반면에 국가 운영 체제의 국영기업들의 수는 계속적으로 줄여 나간다. 민간 기업들의 왕성한 활동에 의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장 제도가 정착하게 되었고, 이와 맞물려 가장 주목하고 있던 미국의 경제봉쇄령이 해제된다. 이로인해 베트남에서 제조한 값싼 생산품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이용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외국인 제조업체들이 몰려들게 된 것이다.
베트남의 또 한번의 개방 정책의 도약은 2007년 WTO 회원국에 가입하면서부터다. 세계 시장 경제 제도와 룰을 따르겠다고 서약한 것이다. WTO 가입을 통해 나라의 경제 제도를 개방하는 정도에 머물지 않고 세계 시장경제의 한 축으로 들어간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체제 변화를 갖기 이전에 그 바닦을 다지기 위해 또 한번의 법률정비가 이루어졌다. 가입 1년전인 2006년 기업법, 투자법을 국제 기준에 맞게 개정하고, 무역법을 신설한 것이다.
올해는 도이머이 정책이 실행된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베트남 정부는 이를 기념해 다시한번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특히, 다자간 자유무역 협정인 TPP 체제를 앞두고 2014년 대대적인 법률정비를 하였다. 주식회사의 의사결정이 과반수 이상이면 이루어지도록 하는 등 선진국형 제도를 수용한 것이다. 베트남 회사의 의사결정 구조가 최초 민간회사법에서는 만장일치였던 것이 2006년 기업법 개정으로 65%, 75%(중요 안건)로 낮추어졌다가, 2014년 개정을 통해 선진국 형인 과반수(51%)로 정리된 것이다. 그 밖에 투자법도 더욱 세밀하게 정비하여 외국인 투자의 원할함을 기했다. 특히, 부동산법을 개정하여 외국인도 주택시장에 개인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베트남 개방 정책의 발전 역사는 입법 역사와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나라의 발전이 입법정책에 있다고 하는 법치제도의 순기능적 측면이다. 춘추전국(BC 770 ~ BC 221)시대의 혼란함을 통일한 진나라의 힘이 어디에서 왔을까? 일개 약한 변방국이던 진나라의 부국강병은 법치에서 오게된다. 진시황은 법가사상의 중심 인물이었던 한비자를 흠모하고 그의 정치철학을 따르게 된다. 강력한 법률 제도를 마련하여 아주 빠르고 신속하게 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진나라는 경직되고 지나치게 엄격한 법 제도의 운용에 따라 한 세대가 가기도 전에 나라가 패망하는 빌미를 제공한다. 법치제도의 역기능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서방에서도 마찬가지로 열국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던 페르시아가 강력한 바벨론을 무너트리고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던 것도 강력한 법 제도 실행에 있었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패망의 근원에도 너무나 경직되고 엄격한 법제도 실행에 있었다.
최근, 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우리나라를 긴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엄격한 법률 시행으로 공직 사회 부패와 부정이 사라질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기대한다. 하지만 우려도 있다. 윤리와 도덕이 관장해야 할 부분까지 모두 법률로 다스리게 되면 오히려 법치제도의 역기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란파라치 등이 사람들을 감시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보게 되는 제도는 분명 신뢰 사회에 저해 되는 일이다. 법률 제정은 고정불변의 것은 아니다. 시행해 보면서 부정적 효과를 수정하고 개선할 수 있다. 또한 시행 과정에서 국민들의 현명한 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 서로를 감시하고 눈치보게 하는 불신사회를 만든다면 이는 법치제도의 역기능을 만들게 될 것이다.
변호사 김 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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