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설, 베트남 사람들과 말(馬)
갑오년 설, 베트남 사람들과 말(馬)
  • 베한타임즈
  • 승인 2014.02.0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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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트남 사람들과 말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에 있어서 말은 주로 마차를 끄는 거마용으로 사용되거나 산악지대에서 짐을 운반하는데 쓰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기마 목적으로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역술에 의하면 12개의 띠 순서 중 일곱 번째 위치를 차지하는 말띠인 사람들이 에너지가 충만하고 정직하며 열렬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또한 말띠인 사람은 군집성이 강하여 주변사람들에게 친근하며 유머로 공동체에 웃음이나 기쁨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신양에서 신성이 타는 말을 부를 때 "님" 이라고 부른다. 많은 신전이나 절에 백마나 적마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제사행사에 오색(청 또는 보라색)으로 만든 말 모형(모조품)이 있어야 하고 제사 지낼 때 그것을 불에 태워서 신에게 드려야 한다.

일부 지방, 특히 봉건제도 시대의 수도이었던 후에(Hue)와 타잉화(Thanh Hoa)성의 신전, 절, 사원들에 돌로 조각한 말들이 있다. 예술 분야에서는 아시아나 유럽의 조각 미술에서 말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전투 때의 용맹스런 말 모습, 물건을 운반하는 순진한 말 모습 등이 그것이다.

"마도성공(馬 到 成 功)" 이라는 그림은 앞으로 향하여 달려가는 말 8마리를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을 가지면 좋은 운수를 만날 수 있다고 하여 특히, 장사하는 사람들은 "마도성공" 의 그림을 좋아한다.



2. 산악지대의 말에 대한 좋은 인상이 있다

산악지대에 출장 가는 동안 필자는 도로가에 돌아다니는 말이나 언덕에서 풀을 뜯어먹는 말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때때로 주인을 졸졸 따라 다니는 말도 보았다. 그러나 말을 타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고, 단지 짐을 싣고 가는 말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필자는 예술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을 그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그린 첫 말 그림은 물감으로 그린 유화였다. 짜우디엔(Dao Tien) 소수 민족인 어머니가 시장 구석에서 말의 등에 짐을 싣는 모습을 그렸다. 1개월간에 걸친 구상 끝에 그림을 그려보았는데 필자의 스승인 쩐꾸억띠엔(Tran Quoc Tien)화가는 "너도 말 그림을 그렸구나? 비견밍(Vi Kien Minh)화가가 그린 말 그림을 보았느냐?" 고 질문을 하셨다. 그 당시 필자는 격려하는 말을 듣고 싶었지만, 스승님의 말씀은 필자의 머리에 찬물을 끼 얻는 듯 했다.

비견밍 화가는 그 당시 학교 선생님이었다. 비견밍 화가가 그린 말 그림은 아주 섬세하고 정밀하여 생동감이 넘쳤다. 하지만 필자가 그린 말 그림은 비견밍 화가와 같은 능숙한 실력가와 비교될 수 없었다. 그러나 필자는 낙심하지 않고 마음속에 말 그림을 계속 좋아하고 있었다.



3. 1973년 처음 하짱(Ha Giang)에 가보았다

하짱 성을 방문한 23일 중에 2주 동안은 시장에 가서 말 그림 그리기를 진행하였고, 필자의 노트에 말 이미지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시간에 따라 말 이미지가 필자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중국 화가인 한간(Han Gan)이나 서비홍(Tu Bi Hong)의 말 그림을 볼 때 정말 아름다운 그림이지만 뭔가 우리와 다른 거리감을 느낀다.

한간의 그림에 있는 말은 귀족의 말이고 뚱뚱하고 호화롭게 보인다. 서비홍의 그림에 있는 말은 용감하고 용맹한 모습으로 묘사하고, 비서민적인 모습이다. 서비홍에 의해 그린 말은 협객처럼 기사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인간생활과 밀접히 관련되어있지 않는 것 같다.

필자에게 말 이미지는 완전히 다르다. 식량을 팔기 위해 등에 무거운 타피오카 자루들을 싣고 밀림을 지나가는 말들을 본다. 또화이(To Hoai)작가의 작품에 의해 묘사한 것과 같이 서쪽 산악지대의 뜨거운 바람 속에서 등에 소금자루를 싣고 평싸(Phieng Sa)굴곡 길을 지나가는 말들을 본다. 이러한 말들을 볼 때는 사람이나 말의 신분이 거의 같다고 느껴졌다.

이때부터 필자의 눈앞에 보이는 말은 '그림과 같이 아름다운' 말이 아닌 것으로 비쳐졌다. 필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말은 다른 이미지로서 개인적으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그 말은 빈곤층의 말이다. 말도 신분이 있고, 말을 볼 때 사람의 신분에 대하여 생각하고 사람을 볼 때 말의 신분에 대하여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필자가 그리고 싶은 것은 말 자체가 아니었고, 말이 갖고 있는 이미지였다. 웅장하고 거대한 산림 속에서 말 이미지는 조그마한 것으로 보이지만, 말은 사람과 함께 산림의 골격을 만들었다.


[베트남통신사_또뜨억(Do Duc)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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