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라사라(Inrasara) 시인은 참(cham)족의 혼
인라사라(Inrasara) 시인은 참(cham)족의 혼
  • 베한타임즈
  • 승인 2013.11.0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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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베트남 문단에서 참파 시인 인사라의 등장은 시 분야에서 미스터리하고 기이한 현상으로 주목 받았다.

실제 이름은 푸짬(Phu Tram)인 시인 인사라는 짝렝-미응이엡(Chakleng) 마을 한 농부 가정에서 1957년 9월 20일 태어났다. 사라(시인의 애칭)는 학문을 좋아하였고 겨우 13살 때 시를 쓸 정도로 똑똑해서 참족 공동체에서 유명했다. 사라는 1969년에 포끌롱 - 닌투언(Po-Klong - Ninh Thuan) 중학교 입학시험에 수석을 하여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다. 15세 때부터 이미 사라는 참의 언어와 문학을 연구 수집하기 위해 참족 각 마을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이때 그는 많은 시를 지었으나 시집을 내거나 신문에 실을 의도는 없었다.

호찌민 사범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다녔으나 2학년 때 연구에 몰두하기 위해 공부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자신이 몰두하고 좋아하는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이에 관한 책을 사야 했었는데, 이를 위해 1년 내내 논을 갈아 돈을 벌어야 했다. 1978년 말 그는 단지 인간의 도리에 대한 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 희귀한 2가지 책 낀밧나(4권)와 낀화응이엠(8권)을 사러 걸어서 닌투언에서 후에까지 간 적도 있었다.

그는 스스로 연구하여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베-참(Viet - Cham)사전을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들기도 했다. 사라는 민간으로 내려오는 좋은 문학작품들에 대해 참족의 지식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친구들과 모임을 자주 가졌으며, 이 작은 모임을 통해 민족 문학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혀갔다. 제일 어려운 것은 고대 참파 언어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한 문장 한 단어를 알아보려고 수십 명의 고령자들을 찾아가 문의한 적도 있었다. 어떤 때는 그는 각 참파문화 센터에 가서 소장된 옛 물건들을 통해서 특별한 참파 문화 색채를 이해하기도 했다. 그는 300년 전에 중국 한지와 야자 잎에 기록된 5편의 사시, 7편의 장편 서정시, 세상사에 관한 10편 시집 그리고 3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한 것들은 지역 참파사람과 베트남 사람들에게 매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옛 문헌이자 문학작품이었다.



문학에 관한 유명세는 사라로 하여금 멀리 가게 만들었다. 1982년 그는 갑자기 판랑에 있는 참파 서적 편집실에서 연구 일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그의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부인과 함께 생업에 뛰어 들어야만 했다. 1992년 초에 호치민 인문사회 대학의 동남아 연구센터 초청으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창작과 연구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시에 대한 재주를 말할 때 인라사라는 "13-14세 때부터 여러 해 동안 베트남어와 참파어로 시를 지었다. 할아버지는 'Ariya Rideh Apwei 장시' 를 펴낸 작가로 유명했는데 아마 저도 이 할아버지로부터 피를 이어 받은 것 같다." 라고 말했다.

시를 일찍부터 지었으나 39세가 되어서야 처녀작품 "탑낭(Thap Nang, 1996)" 을출판 하였다. 놀랍게도 이 작품이 1997년 베트남 문학가 협회로부터 문학 대상을 차지했다. 그 이후 인라사라는 베트남 문학가 협회 특별 회원으로 가입이 되었다. 그는 당시 내용과 형식면에서 대담하고 서정적인 스타일의 시로 아주 빠르게 베트남 스타 시인이 되었다. 그는 작품에서 항상 "나" 를 존중하는 입장을 꾸준히 견지했다. 25년 이상 계속해서 수십 작품을 발표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대표적 작품으로 '용가시 나무의 생일(베-참 언어 1997)', '나의 순례(1999)', '4월 세례식(2002)', '인사라' (2003 시)등이 있다.

1998년 그는 베트남-동남아 연구센터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 와 참파문화 연구, 시와 문학 작품 쓰기, 번역과 에세이, 문학비평에 관해서 전념하였다. 참파민족 문화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사라는 각 마을을 다니면서 참파 문서들을 손으로 베껴 보관했다. 1994년에 인사라는 1200페이지에 이르는 두꺼운 참파문학 개론을 출판하였는데 소르본느(Sorbonne)대학 라폰트(Lafont) 교수가 평가하기를 "인문학적으로 매우 큰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일반적 참파문화 연구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고 말했다. 참파 문화와 문학의 각 연구 과정에서 폭넓은 여러 가지 종류의 책을 발표하였다. 그는 몇 종의 소설책을 발간하기도 했는데, "기억코드(2001)", 모래의 초상(2006) 등이 있다. 이 시점에서 그는 약 5000페이지에 상당하는 10편의 소설과 평론집 3편을 담은 "참파 문학 총론" 를 편집했다. 여러 해 수집을 거친 후 부부는 고향집에서 자신의 민족 전통 가치들을 보존하기 위해 2010년에 인라하니(Inrahani) 참파 문화 전시장을 건축하였다.

현재 인사라 시인은 베트남 문학회-시인회 부회장이며 베트남 소수 민족 문학 예술 이론 비평회 수장을 맡고 있다. 그는 늘 많은 대학을 찾고, 대도시 문학가 협회 주최 문학과 문화 토론회에도 참여한다. 인사라는 2번(1997년과 2003년)에 걸쳐 베트남 문학회 대상을 수상했다. 1995년에 그는 참파문학 연구(1집) 공노로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 소속 동양 역사 문명과 역사 센터의 수상 영예를 얻기도 했다. 2005년에 그는 태국에서 "4월 세례식" 이란 작품으로 동남아 문학상을 받았고 그 외에도 2009년에는 팜짜우찐(Phan Chau Trinh)상과 함께 유명한 다수의 상들을 수상했다.

[베트남통신사_ 또반(Do Van)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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