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불교문화 특집] 제7부
[베트남 불교문화 특집] 제7부
  • 베한타임즈
  • 승인 2018.03.2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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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선종(禪宗)의 소개


서기 580년 인도승 비니타루치가 베트남에 와서 불교의 선종(禪宗)파를 설립하였다. 인도 남부 출신의 브라만인 비니타루치는 서기 562년 중국의 장강(長江)에 도착하였다. 이 시기에는 중국의 무제(武帝)가 불교를 탄압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하남(河南)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중국 선종의 3조(三祖) 승찬(僧粲)을 만났다. 그는 노공산(盧空山)에 좌선하고 앉아있는 승찬 앞에서 존경하는 마음으로 고두삼배(叩頭三拜)하였다. 그러나 승찬은 침묵하였다. 기다리는 동안 비니타루치는 관조하고 좌선하였다. 그는 갑자기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열림을 느꼈다.

그는 선사 앞에서 다시 세 번 절하자 선사가 말하였다. “여기서 더 이상 머무르지 말라! 남쪽으로 가서 사람들과 어울려라.” 이 조언을 따라 비니타루치는 남으로 가서 광주(廣州)의 제지사(制止寺)에 머물렀다. 서기 589년 그는 베트남의 법운사(法雲寺)로 옮겨 총지(聰智:다라니)경을 번역하였다.

그는 입멸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게(偈)를 읊었다. 이것은 후대에 선원집영(禪苑輯影)에 인용되었다.

“부처 정신의 도장(圖章)은 저절로 잘못으로 인도하지
아니하고 완전하게 니르바나(涅槃)로 인도한다.
그것은 모자라지도 아니하고 남지도 아니하며,
그것은 가지도 아니하고 오지도 아니하니,
그것은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없고,
그것은 사라짐도 없고 차별도 없다.
그것은 계속됨도 없고 멈추지도 않는다.
그것은 태어난 곳도 없고,
그것은 소멸함도 없다.
그것은 떨어짐도 없고
그것은 붙음도 없다.
왜냐하면 틀린 원인과
나쁜 이름이 주어졌기에.
그러므로 삼생에 부처가 그것을 사용하여 성공한 것이 아닌가?
우리의 시조로 부터 누대(累代)를 이어 이것으로 성공하였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것으로 성공하였다.
그대도 마찬가지다. 그것으로 성공할 것이다.
살아있는 육신이나 정신이 없는 육체가 하나같이 이것으로 성공한다.
나의 선조(先祖) 승찬도 부처의 마음의 도장을 나에게 새겨 주었다.
나에게 빨리 부처의 세계에 가게 하여다오 더 이상 여기에 머무르지 말고
나는 여기에 오기 전에 많은 지역을 여행하였다.
여기서 그대를 만난 것은 억겁의 인연이다.
부디 깨어서 정진하라.
이제 나는 간다.

서기 594년의 일이다. 비니타루치의 전기는 짧지만 흥미있는 역사적 사실을 전해준다. 예를 들면 중국 선종의 제 삼조 승찬의 제자이었다는 것과 비니타루치가 선종의 4조일 것이라는 것과 중국에서 4조인 도신(道信)과 같은 제자라는 것이다.

그의 게송의 처음에 비니타루치는 부처의 심안(心眼)을 말한다. 부처로부터 주어진 값진 틀림이 없는 귀중하고 깨끗한 정신에 대하여 말한다. 선종에 따르면 깨달음과 각성은 마음의 깨침이다. 그러나 이 마음은 어떻게 있는가?

비니타루치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오로지 연속적인 부정을 사용한다.
“그것은 모자라지도 아니하고 남지도 아니하며,
그것은 가지도 아니하고 오지도 아니하니,
그것은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없고,
그것은 사라짐도 없고 차별도 없다.
그것은 계속됨도 없고 멈추지도 않는다.
그것은 태어난 곳도 없고,
그것은 소멸함도 없다.
그것은 떨어짐도 없고
그것은 붙음도 없다.”… 운운

이것은 마음은 확실히 존재하지만 말이나 개념으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것은 자각하거나 깨달을 수 있을 뿐이다.

선원집영에 의하면 베트남의 선문(禪門)은 중국 선종의 삼조 승찬의 심안법맥을 이은 인도인 승려이다. 우리는 인도 선의 한 큰 맥을 계승한 선종을 중국에 소개한 보리달마(菩提達摩)를 안다. 그것은 오로지 육조 혜능(慧能)으로 부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6세기 말에 북쪽으로 부터 인도 선의 많은 외양을 간직한 베트남 선종이 설립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선연집영은 비니타루치에 의하여 설립된 선종의 19대를 계승한 승려의 명단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1.비니타루치(591년 입적)
2.법현(626년 입적)
3.혜엄(법현의 300제자 중 1인)
4.성빈(686년 입적)
5.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승려
6.그의 생애가 알려지지 않은 승려
7.남평사(南平寺)에 주석한 용선(龍船)
8.정공(定空:808년 입적)과 2명의 이름이 알려지지 아니한 승려
9.총선(總善)과 이름이 알려지지 아니한 승려
10.라귀안(羅貴安:946년 입적), 법순(法順:991년 입적)마하마야(1029년 입적)외 생애가 알려지지 아니한 승려

비니타루치에 의하여 설립된 선은 당대의 중국의 선이 아직 인도 선에 깊숙한 영향 하에 있을 때여서 강하게 영향을 받았다. 인도의 선은 명상을 아주 크게 여긴다. 명상을 통하여 현녀(賢女)프라즈나는 일반적인 책에서 마귀의 힘이라고 부르는 초능력을 개발하여 계몽적인 수련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명상을 수련하는 모든 종교인과 밀교 영역 안에서 초능력을 타고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명상의 어느 과정에서 어떠한 밀교와 관련 없이 모든 수련자는 거대한 초능력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모든 아라한(阿羅漢)은 초능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밀교의 추종자들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밀교는 인도에서 7세기와 10세가 동안에 유행하였고, 비니타루치가 562년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번역한 불교경전 상두성사(가야시라스)는 밀교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반대로 마하냐나 프라즈나의 매우 중요한 경전이다.

비니타루치와 법현의 첫 대면에서 언어를 초월하여 교설의 진수에 대한 개념과 서술에 대하여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선연집영에서 보여주는 일화는 다음과 같다.

광주에서 법운사에 온 비니타루치는 은근하게 법현에게 물었다. “그대의 혈통의 이름이 무엇이오?” 법현 승려는 대답하였다. “대덕이시어 그대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비니타루치는 다시 물었다.
“그러면 그대는 이름이 없지요, 그렇지요?”
법현이 대답한다.
“내가 이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대는 그걸 어찌 아오?”
비니타루치는 중얼거렸다.
“내가 무슨 이유로 그대의 이름을 알아야 한단 말인가?”

법현은 즉시 깨달았다. 그리하여 비니타루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로부터 조언과 가르침을 받았다. 비니타루치에 따르면 자연의 힘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알려고 하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다. 이 힘은 말과 개념을 떠난 것이다. 그것은 명상관조(瞑想觀照)를 통하지 않고 가시화 할 수가 없다. 깨달음을 통한 프라즈나의 지혜를 통하여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비니타루치의 선종의 맥은 다음세대의 선사에게 그들의 게(偈)나 시(詩)를 통한 문답을 통하여 교조의 사상이 계승되었다. 도한(道行:12세)선사와 혜생(慧生:13세)선사가 그들이다.

원저자: 명지(明枝), 하문진(河文進), 원재서(阮才書)
역 자: 반명근 VIETASIA LAWFIRM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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