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불교문화 특집] 제10부
[베트남 불교문화 특집] 제10부
  • 베한타임즈
  • 승인 2018.04.1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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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왕조하에서의 절과 탑


이씨왕조의 불교에 대한 모든 종교적, 문화적 양상을 알고자하면 당대의 절과 탑을 연구하면 된다. 베트남 역사에 대한 고서인 대월사략(大越史略)과 대월사기총서(大越史記叢書)에는 이씨왕조의 역대 왕과 절과 탑의 건설을 보여주고 있다. 그 책속에 전하는 바로는 국가의 비용으로 건설하거나 많은 기타 사탑이 중국인이나 대중들에 의하여 지어졌다고 한다.

얼마 뒤 1010년 수도 승용(昇龍)에 천도하였고 왕 이태조는 많은 절을 그곳에 건립하였다. 수도중심에는 흥복사(興福寺)를 도심외곽에는 승엄사(勝嚴寺)를 건립하였다. 1년 후인 1011년 만혜사(萬慧寺)가 수도 안에 나타나고 더불어 자대천왕(慈大天王), 감이(感異), 용흥(龍興), 성토사(成土寺)가 성 밖에 지어졌다.

1016년에는 천광(天光)과 천덕사(天德寺)가 지어졌고, 1024년에는 진교사(眞敎寺)가 지어지고 왕이 불경을 강연하는데 참석하는 일이 이루어졌다. 1031년 왕위 즉위식에 즈음하여 왕 이태종(李太宗)은 150개의 가람을 건축할 것을 명하였다. 1041년 불교수도원 자씨천복(慈氏天福)을 선유산(仙維山)에 건립하였다.

1049년에는 연휴(延休)혹은 일주사(一柱寺:기둥이 하나인 절)를 승용(昇龍)에 건립하였다. 이성종(李成宗)치세동안 1056년 오늘날의 하노이 대성당 근처에 숭경보천사(崇慶報天寺)를 지었다.

1057년에는 천복(天福)과 천토사(天土寺)와 대승사천탑(大乘思天塔), 1058년에는 도산(途山)에 상용(祥龍)탑, 1959년에 숭엄보덕사(崇嚴報德寺), 1066년에 선유산(仙維山)탑을 그리고 1070년에는 승용(昇龍)에 이천왕사(二天王寺)를 건립하였다.

이인종(李仁宗)의 치세에 전국에 많은 절과 탑을 조성하였다. 그의 어머니 영인(玲仁:綺蘭이라고도 칭함)은 그녀의 생전에 100개의 절을 조성하도록 명하였다고 한다. 그중의 일부를 임산(覽山:하북지방의 桂武)에 1086-1091년간에 짓고(1088년에 완공) 경용동경사(景龍同慶寺)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1099년에는 안노산사(安老山寺)가 지어지고, 1100년에는 선유산에 영복사(永福寺)가 지어졌다. 1105년에는 전유사의 쌍둥이 탑이 세워졌다. 또한 같은 해에 임산사(覽山寺)에 세 개의 탑이 조성되었다. 1108년에 착공하여 1117년에 낙성한 장산(璋山)의 운봉성천탑(雲峰成天塔)이 지어지고, 1114-1118년에는 승엄사(勝嚴寺)가 지어졌다. 천불상(千佛像)이 조성되고, 1115년에는 하북지방 순성(順城)에 숭복사(崇福寺)가 지어졌다. 1118-1121년간에는 하남녕(河南寧) 유선(維仙)의 대산에 숭선연령탑(崇禪延靈塔)이 조성되었다.

1119년에는 정려사(靜慮寺)를 1121년에는 보천사(報天寺)를 낙성하였다.

1121년과 1123년 사이에는 선유산에 광교사(廣敎寺)를 건립하고, 1123년에는 봉자사(奉慈寺)를 낙성하고 1127년에는 중흥연토사(中興延土寺)를 건립하였다.

1131년 이신종(李神宗) 치세에는 천령과 천토사가 지어졌다. 이영종과 이고종의 치세에는 국가비용으로 어떤 새로운 절을 건설하였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1179년 진교사(眞敎寺)가 이씨왕조의 마지막왕인 이혜종(李慧宗)에 의해 불타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하여 절이 복원되고 땅이 확장되었다.

현존하는 석비에 의하면 절과 탑의 대부분은 일반 개인에 의하여 조성되었다. 1099-1100년에 지어진 청화(淸化)에 있는 안획산의 보은사, 1107년 하선(河宣)에 있는 보녕숭복사(報寧崇福寺), 1126년 청화의 앙산(仰山)에 령칭(靈稱)사, 1117년에 청화의 숭엄연성사(崇嚴延聖寺), 1121-1122년에 하남녕의 연복사, 1156-1157년에 해흥(海興)의 연복사(延福寺), 1029년 하노이의 탑묘(塔廟)에 사가보안사(寺伽報安寺)를 건립하였다.

이씨왕조에 의해 지어진 절과 탑은 일반적으로 건축학적으로 복합적인 구조였는데 중심이나 축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절은 대부분 복층구조였다. 승용에 있는 보천사(報天寺)는 12층을 넘는 수 장(丈:1장은 4m)이나 되었다. 하남녕의 도이사는 13층이며 청화의 영칭사(靈稱寺)는 9층이었다.

하북의 불적사(佛蹟寺)는 10장 높이에 기반부(基盤部)의 한변의 길이는 8.5m나 되었다. 장산(璋山)의 운봉성천탑(雲峰成天塔)은 기반부의 한 변의 길이가 19m로 이것은 확실히 불적사의 탑보다도 높았다. 이 시기의 절과 탑은 대부분 돌에다 얕은 부조의 조각상으로 장식하였다.

하북의 불적사는 이들 전형적인 코끼리, 사자, 물소, 말, 코뿔소를 새기고, 하노이의 삼면사와 해흥의 랑사의 계단은 유니콘(뿔 하나인 말)상이 새겨져있다. 장산(璋山)탑의 지붕에는 새들이 조각되어 있고, 장산탑과 불적사에는 춤추는 여인의 모습이 장식되어 있으며, 꽃 무늬와 연꽃과 파도 모양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이조(李朝)와 진조(陳朝)의 문학은 영칭사(靈稱寺)의 장식의 모양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벽면에는 나라에서 나는 여러 가지의 과일과 기이한 자연의 모습을 매우 아름답게 그려 놓았다.”

또한 숭엄연성사(崇嚴延聖寺)에 대하여는 “벽에는 인과경의 내용과 초자연적인 전능한 힘에 대하여 그려져 있다.”

이 시기의 불교는 이조의 예술적인 영감의 근원을 제공하였는데 당대의 기념비적인 불교의 미(美)를 나타내는데 기여하였다.

이조의 시기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사원과 탑의 조각상은 당대의 예술과 불교를 연구하는데 매우 가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조각상은 돌로 조각된 하북의 불적사, 하산평(河山平)의 일매사(一梅寺), 하남녕(河南寧)의 오사(吳舍)사에 있는 세 점이 현존하고 있을 뿐이지만 말이다. 이중 불적사의 것이 가장 아름답다. 이것은 1057년에 조성되고 기단에서 1.87m 높이이다.

이조(李朝)에서 절에는 많은 부처상, 보리살타, 데바라디아스상을 조성하였지만 그 후에는 그다지 많지 않다. 남아있는 중심주로부터 각 절에서 서로 다른 조각상을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조에서 건설된 자재천왕사(自在天王寺), 이천왕사(二天王寺), 자씨천복사(慈氏天福寺), 지장사(地藏寺)등은 특별하게 부처, 보리살타, 데바라디아스를 숭배하기 위하여 건설하였음을 느끼게 한다. 예를 들어 승용의 보천사는 사람들이 가뭄이나 비가 내리지 않을 때 기도하기 위하여 모였는데 상사(桑寺)의 법운부처상을 그곳에 모셔온 것은 불교와 대중의 믿음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시대에 지어진 절과 그 곳에서 거행된 식전(式典)덕택으로 당대의 불교의 이질적인 자연신과의 연관성과 성격을 파악할 수가 있다.

원저자: 명지(明枝), 하문진(河文進), 원재서(阮才書)
역 자: 반명근 VIETASIA LAWFIRM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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